[38년]스탈린,"중일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분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중일전쟁과 소련?

1936년 11월 독일과 일본의 방공협정 체결부터  1939년 8월의 독소불가침조약까지,
장개석의 항일 활동의 최대 후원세력은 영국,미국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일본의 예상과 다르게, 중일전쟁에서 장개석이 샤를 드골에 필적할 만한, 일본에 대한 끝없는 저항의지를 보여준 배경에는 소련의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장개석은 소련의 군사원조를 넘어서, 소련의 중일전쟁 개입을 희망했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중국의 개입 요구에 대해서 소련은 개입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역시 줄기차게 기다려달라고 주장했다. (장개석은 1945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ㅠㅠ) 중국에 대한 스탈린의 정책은 모호하지 않았다. 스탈린이 전쟁 개입의 여지를 남겨둔 것은 개입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장개석이 일본과 평화를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장개석은 일본과 평화를 추구한다고 위협하면서, 소련의 지원을 늘릴 수 있었다. 

John W. Garver, Chinese-Soviet Relations, 1937-1945: The Diplomacy of Chinese Nation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1 edition (September 8, 1988),25.

장개석이 38년초에 손과 (쑨커 孫科 Sun Ke, 손문의 아들)를 소련에 보낸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1938년 2월 4일 손과는 스탈린과 장시간 동안의 음주 만찬을 벌였다. 스탈린은 소련의 전쟁 개입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중국 측에게 인내를 강요했다. 

스탈린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국제 상황이 소련의 개입을 위해 아직 적당하지 않다. 기회가 무르익기 전까지 기다려야 한다. 만약 영국,프랑스,미국이 소련과 같이 행동한다면, 소련은 중국에 군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소련 단독으로 군대를 보내면, 독일과 이탈리아가 일본을 돕게 만들 뿐이며, 중국에 대한 국제적 동정여론이 약화되며, 소련이 중국을 공산화하려 한다는 선동이 제기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중국의 항일 전쟁의 이익에 배치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련 정부는 현재의 불개입 정책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중국을 물질적으로 지원할 것이고, 영국,프랑스,미국이 중국을 돕도록 설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지도자들이 장래의 소련 개입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스탈린은 이런 여운을 남겼다. 극동의 소련군대는 적극적 전술 행동을 계속하고 있고, 개입의 순간을 기다라고 있다. 

손과는 이 대화를 2월 7일에 장개석에게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보고했다.


참고-

John W. Garver, Chinese-Soviet Relations, 1937-1945: The Diplomacy of Chinese Nation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1 edition (September 8, 19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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