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인도차이나에 대한 나치 독일과 일본의 갈등?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삼국동맹>

"동맹이 사실상 존재하게 되었다. 왜 우리에 대한 다른 세력의 적대감만을 고취시킬 뿐인 동맹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 것인가? 그들은 동맹을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 치아노
이탈리아 외무장관 
1938년 10월 28일

삼국동맹의 결성으로, 독일과 일본이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1940년 9월 27일의 삼국동맹 결성으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은 동맹국이 되었기 때문에,
독일이 이제 아시아에서 일본이 추구하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인정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삼국동맹의 대동아 Greater East Asia 에서의 일본의 리더십을 인정한다는 조항의 모호성이 문제가 되었다. 일본의 리더십을 어디까지 인정한다는 것인가?

삼국동맹 체결 직후, 일본 영향력 하의 대동아 국가들과 독일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다. 일본은 대동아국가와 독일의 관계는 일본을 매개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들 국가들과의 양자관계 bilateral 를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태국과 인도차이나와의 관계가 문제였다.

가령, 독일은 자신의 통제하의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통해서, 인도차이나에서의 경제적 이권을 얻으려 했지만, 일본이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1940년 9월의 프랑스-독일 경제 협정이 문제였다. 협정을 통해서, 비시 정부는 독일에게, 다음 해인 41년에 인도차이나 고무 생산량의 대략 2/5를 보장했다. 그리고 프랑스 자신은 고무 생산량의 1/4을 확보했다.

일본은 이 협정에 대해 분개했고, 이는 인도차이나 고무에 대한 자신의 지분에 대한 위협이자, 아시아에서의 일본 패권에 대한 중요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1940년 10월 말, 일본은 독일에게, 사전 협의 없이, 인도차이나와 네덜란드 동인도와 협정을 체결하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참고-
Ian A. McLaren, Nazi Germany and Imperial Japan: The Hollow Diplomatic Alliance, 



덧글

  • 까마귀옹 2018/09/05 12:11 # 답글

    저 부분이 엉뚱하게 인도적인(?) 부분으로 흘러간 적도 있었죠. 상하이, 홍콩 등 일본군 점령지에 사는 유대인들을 독일 측에서는 제대로 '처리'하라고 강권했지만 일본은 그냥 귀 씻고 땡.

    (하긴 그러고 보니 일본군은 다른 곳에서 학살하기 바빠서 그랬나?)
  • 파리13구 2018/09/05 13:24 #

    러일전쟁 때 돈을 준 자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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