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이시하라 간지가 중일전쟁을 반대한 논리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이시라하 간지의 논리]

1936년 여름, 2/26사건 이후 육군내 황도파에 대한 숙청이 한 창인 상황에서,
이시하라 간지는 통제파의 중국 진출 논리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고 한다.

왜 가장 위험한 적이 전통적인 숙적인 러시아인, 이 때에 중국과의 전쟁이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한번에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약한 중공업을 가진 일본에게 자살이 될 것이다. 대신에 일본은 소련과의 전쟁 준비를 마칠 때까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데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한다. 중공업에서의 자급경제를 완성하기 위해서, 일본은 일련의 5개년 계획을 통해서 만주의 자원을 개발해야 하며, 그 동안 러시아,중국과의 충돌을 피해야 한다. 1952년, 일본 경제가 정점에 도달하면, 러시아에 대한 전면전을 벌일 수 있으며, 승리가 가능할 것이다. 이것만이 일본을 구할 수 있으며, 중국과 동남 아시아에 대한 진출을 주장하는 통제파의 주장은 영국과 미국과의 전쟁을 초래할 것이라 이시하라는 주장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일본의 진정한 적이 러시아에게만 이익이 될 것이다. 이시하라에 따르면, 일본의 진정한 위험은 도쿄에 도사린 것이 아니라, 만주에 있다고 주장했다. 

John Toland. The Rising Su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Japanese Empire, 1936-1945, Modern Library; Reprint edition (May 27, 2003),36.



덧글

  • 까마귀옹 2018/09/03 15:54 # 답글

    이시하라 간지를 보면 분명 1차원적인 바보는 아닌데......단순히 '활동의 폭을 찾지 못한 인재'라고 보기에는 또 능력 면에서 엉성한 부분이 많고. 저로선 평가하기가 좀 어려운 인간입니다.
  • 파리13구 2018/09/03 15:57 #

    저도 동감입니다. ^^
  • 2018/09/09 01: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갑신정변 2019/05/08 05:34 # 삭제 답글

    이사하라 간지의 성공작품이 만주사변..만주국 개발..쯤에서 그치고 이후 도죠 한테 짤린건 우리 민족 입장에선 축복 입니다. 일본 국국주의를 지속가능하게 경영하기 위한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한게 이시하라 간지라고 봅니다.

    흔히들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사하라를 태평양 전쟁 전체의 전범 시초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좀 디테일 하지 못한 지적입니다.
    이시하라 간지는 만주를 먼저 공업화 하고 충분한 경제력을 갖춘 다음 추가적인 전쟁을 시작하자고 했고 중일전쟁이나 영.미등 서방세계 보다는 소련을 견제하는걸 더 강조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고약한 일본놈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관점에선 이러한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 거죠...

    마치 19세기말 사이고 다이묘의 정한론 vs 오오쿠보 도시미치의 선 근대화.공업화 후 침략~ 노선의 대립과 같은 꼴입니다. 먼저 실력을 갖추고 대외침략을 개시하자는게 훨씬더 합리적인 주장이지요.

    조선.만주국.대만 식민지배의 공통점은..현지화와 경제발전입니다. 그 결과..자생적 부역자 집단을 마들어 내고 총 칼로 압제 학살을 하지 않고서도 "경영"을 할수 있었죠. 하지만 중일 전쟁에서 보여전 참극은..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닙니다. 만일 일본이 군사력만 믿고 무리한 전쟁을 일으킬게 아니라 만주국을 충실이 운영해서 공업화를 추진하고 해군력 보다.소련을 상대하기 위한 기갑 포병등 육군의 고도화에 더 투자 하고 미국이 아닌 소련과 주도적으로 전쟁을 벌렸다면 일본은 훨씬더 오래 갔을 겁니다. 가령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당시 해군력 수준을 해군이 아니라 육군에 투자해서 독일의 판저탱크나 소련의 .t-34 정도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역사가 많이 달라 졌을 겁니다.

    중국을 침략하더라도 중국 본토 전체를 적으로 삼을게 아니라 만주국을 발판으로 화북지역만 장악해서 군벌과 공산당만 정리하고 식민지 경영하고 남쪽의 국민당과는 경제교류를 했다면 장개석과 공존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당의 수준이라는게 일본이 쳐들어 와도 애국심을 가지고 제대로 싸울수 있는 집단은 장개석의 중앙군 50만 정도.였죠. 어차피 개념없는 나라인데 걍..경제적 이권만 보장된다면..스스로 북진해서 일본을 몰아내질 못할 겁니다. 그리고 나서 독소전때 독일과 합작해서 소련의 뒤를 치는데 집중했다면 소련도 못 버텼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련을 바이칼 호수를 기점으로 독일과 반반 먹는거죠.

    이시하라 간지가 이런 전략을 짰을지는 모르지만...미.영.중국 보다는 소련을 주적으로 삼자는 점. 또.대륙진출도 억압과 차별 보다는 오족연합회 처람 공존과 자치를 보장해 주자는 게 이시하 간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중일전쟁에서 처럼 실제 한 짓들과 달리 이시하라 간지의 구상이 국가적 차원에서 실현됬다면 실제 역사가 일본에 더 유리하게 전개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시하라 간지의 개인적인 종교성향이나 과대망상증 때문에 순수한 군사전략가로서의 자질도 같이 폄하되는것 같은데..같이 섞어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연합군 명장으로 불리는 일본군의 똘아이 무대뽀 장군들.."일본군은 풀만 먹으면서 싸울수 있다.보급은 필요 없다 " 는 등..이런 자들에 비하면 나중에 물량전으로 흐르게된 태평양 전쟁에 대한 따끔한 지적등..군사전략가로서는 가장 현실성 있는다는건 인정해야 하구요. 다만 잠재된 목표나 내면세계가 좀 똘끼가 있고 정신의학에선 이런 성향을 더 위험하게 보긴 하죠
  • 파리13구 2019/05/08 07:58 #

    그는 통제파였나요, 황도파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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