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미국 태평양함대의 우왕좌왕...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역사가 데이비드 레이놀즈에 따르면, 1940년과 1941년 미국의 태평양 정책의 특징은 즉흥성과 혼돈이었다. 그 예가 미국 태평양 함대의 주둔지 문제였다. 

1940년 여름, 유럽대륙에서 히틀러의 놀라운 빠른 승리가 동남아시아에 힘의 공백 사태를 만들었다. 이 곳에 식민지를 가진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몰락하고, 영국은 섬에 고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에서의 세력권 구축을 노리던 일본에게는 신이 내린 기회였다. 

만약 미국이 아시아에만 시선을 고정했다면, 태평양함대의 하와이 주둔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더 나아가, 싱가폴,필리핀으로의 전진 배치도 논의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는 대서양과 유럽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서반구 방어와 영국 지원이 우선이었고, 미국이 우선과제를 수행할 동안, 아시아에서의 전쟁에 말려서는 안 되었다. 또한 섬에 포위당한 영국이 독일에게 항복할 수도 있었다. 

아시아의 세력균형과 유럽의 위기가 동시에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쟁점은 미국 주력 함대의 위치 문제였다.

1940년 3월 말, 미국 서부 해안의 샌디에고에 기지를 가지고 있었던 미국함대가 가상 전쟁훈련을 위해서 하와이 수역을 향해 떠났다. 루스벨트는 함대의 귀환을 연기시키고, 하와이의 진주만에 계속 주둔하게 했다. 일본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공격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였다. 

6월 말,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육군 참모총장 마셜과 해군 작전국장 스타크가 미국 함대의 하와이 주둔을 문제삼았다. 국무부의 섬너 웰스까지 가담하여, 그들은 함대의 일부라도 서부해안으로 귀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붕괴에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

다행히도, 영국해군이 프랑스 함대를 중립화시켰고, 그해 여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실패하면서 미국의 불안이 해소되었고, 미국 함대는 진주만에 잔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루스벨트가 고집한 하와이 잔류는 즉흥적인 정책이었다. 마셜,스타크,섬너 웰스 뿐만아니라, 함대 사령관도 반대했고, 미국 함대는 일본의 공격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명확한 지침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물론 루스벨트도 유럽이 우선임에 동의했다. 하지만, 전쟁을 배제한,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는 정책의 강도를 두고 참모들과 대통령은 의견을 달리했다.

출처-

David Reynolds , From Munich to Pearl Harbor: Roosevelt's America and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American Ways Series),  Ivan R. Dee (August 5, 2002), 88-89.  




덧글

  • 2018/09/01 09:15 # 삭제 답글

    미국의 정책도 즉흥적이었군요.
    이런 요소가 태평양에서 일본 제어에 실패하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 요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과제가 어렵긴 하네요. 두 개의 바다를 관리해야하니
  • 파리13구 2018/09/01 10:29 #

    전략을 가진다는 것은 자원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 한계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자원 활용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전략 선택은 독일을 먼저 처리하고, 일본은 현상을 유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현상유지를 위한 정책의 강도를 두고
    이견이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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