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겨울] "위기의 일본 제국!!"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8년 8월의 독소불가침 조약은 일본에게 "놀라움, 당황,분함,원통" 그 자체였다.

1933년 국제연맹 탈퇴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일본은 북진을 위해 독일과의 동맹이 필요했다. 하지만 동맹 교섭은 독소불가침 조약으로 중단되었다. 

38년 5월-9월의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에게 참패한 일본은 믿었던 독일이 자신의 주적인 소련과 손을 잡는 사태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 전쟁의 발발로, 독일로 부터의 수입이 중단되면서, 일본 경제는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독일로 부터의 기계류와 산업 설비의 수입이 전쟁 때문에 중단되었다. 따라서 만약 북중국과 만주로부터의 자원 공급이 중단되면, 일본은 1931년 이전의 상황으로 후퇴할 수도 있었다. 

불행 중에서도 일본은 6월의 텐진 위기에서 영국에게 망신을 주면서 화풀이하는데 성공한다. 텐진 위기에서 일본군이 텐진의 영국 조계지를 포위,봉쇄했다. 7월의 영국대사 크레기와 일본 외무장관 아리타 협정을 통해서, 영국은 중국에서 질서 유지를 위한 일본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

크레기-아리타 협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7월 26일에 미국의 외교적 기습 반격이 있었다.일본은 39년 겨울부터 40년까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일본이 얻은 것은 38년 7월의 미국의 통상조약 파기 통보였다. 6개월 뒤, 미일통상조약이 파기될 예정이었다. 조약 파기의 의미는, 미국이 이제 법률의 속박없이 일본에 대한 무역 제재에 나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더우기, 중일전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1940년, 일본군은 더 이상 후퇴도 전진도 못하는 한계에 도달했다. 일본군 85만 명의 병력이 중국에서 발목이 잡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이 아직은 일본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는 한계가 있었다.   

39년 겨울, 일본은 사면초가 상태에 직면했다. 

참고-

David Reynolds , From Munich to Pearl Harbor: Roosevelt's America and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American Ways Series),  Ivan R. Dee (August 5, 2002), 87.



덧글

  • eggry 2018/08/31 10:52 # 답글

    대소련 정책이야 말로 독일과 일본 동맹의 최대 패착... 그리 말이 안 통하는데 같은 편이라니
  • 파리13구 2018/08/31 11:04 #

    우리가 이럴려고 동맹을 했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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