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주사변과 미국,영국,소련의 대응?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승리에 환호하는 일본군 -1931년>  -지금은 웃고있지만..ㅠㅠ

만주에서의 일본 관동군의 도발에 대해서 왜 열강은 무기력하게 대처한 것인가? 

1931년 만주에서의 일본 관동군의 도발에 대해서, 만주의 군벌 장학량은 화북에 병력을 모으로, 만주의 변경을 게릴라식으로 공격하는 저항을 했다.

장개석은 국제연맹에 호소, 열강의 압력에 의해서 만주를 회복하는 방침을 세웠다. 그는 만주를 포함한 전 중국의 통일을 원했지만, 당시의 그의 국내 관심사는 공산세력의 토벌에 있었고, 일본과의 전쟁으로 병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장학량과 장개석이 머뭇거리는 동안, 만주에서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는 영국,미국,소련 3국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3국 중 어느 나라도 개입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국무장관 헨리 스팀슨은 "불인정 독트린"을 선언, 일본의 기정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고, 후버 정부는 위협을 위해서 태평양 함대를 하와이로 집결시켰다. 그럼에도 미국은 극동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효율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경제가 불황상태였기 때문이다.

영국도 경제적 곤경 상태에 있었고, 그 정책은 유화를 향했다. 영국은 일본을 소련에 대해 균형추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소련은 스탈린과 트로츠키 권력 투쟁으로 인한 혼란 이후 경제 재건이 한창이었다. 따라서 당분간 소련은 국제 분쟁에 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소련 정부는 일본의 북만주 진출에 대해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1935년에는 소련 소유의 동청 철도를 일본에 매각하고, 아무르 강 너머로 철수했다. 

만약 만주 사변이 외세의 개입을 피하기 위해서 정교하게 기획되었다면, 그 때는 완벽했다. 국제 정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출처-

IKUHIKO HATA,. (1989). Continental expansion, 1905–1941. In P. Duus (Ed.), The Cambridge History of Japan (The Cambridge History of Japan, pp. 271-314).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96-297.




덧글

  • 까마귀옹 2018/08/29 16:10 # 답글

    어떻게 보면 뮌헨 협정 때와 상황이 비슷하군요.
  • 파리13구 2018/08/29 16:32 #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뮌헨에서 영국은 독일의 불만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만주에서 미국은 일본의 요구에 이유가 없고, 조약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는 것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