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영국, 극동을 버리고 소련을 선택하다?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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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이란, 그리고 전략적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자원의 한계를 고려하여,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41년 후반의 영국의 선택이 전략적 선택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극동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영국의 선택은 일본에 대한 유화로 볼 수 없다. 

40년의 유럽 전쟁이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무방비상태로 만들었다면, 
41년 6월의 독소전쟁은, 극동의 러시아 육군의 공백 상태를 유발했기 때문에, 일본은 팽창을 통한 아시아의 신질서 구축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일본은 비시 프랑스를 압박, 일본군이 남부 인도차이나로 상륙, 인도차이나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일본의 인도차이나 침략에 격분한 미국은 미국내 일본 자산 동결 및 일본에 대한 금수조치로 보복했다. 그리고 미국의 뒤를 이어서, 영국과 망명 네덜란드 정부가 금수조치에 동참했다.

영국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앨런 브룩에 따르면, 영국과 네덜란드가 금수조치에 동참함으로써,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에 대한 일본의 공격은 장래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일본의 공격 위험이 높은 상황임에도, 극동의 영국 군사력은 비참한 수준이었다.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들은 매우 위험한 사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브룩에 따르면, 영국의 동방 제국들은 해군력에 의해 창건되고 유지되어왔었으나 이를 방위할 함대조차 없었다. 또한 해군력의 대체 수단으로서 현대적 항공기로 구성된 공군력도 보유하지 못했다. 일본이 말레이 반도 공격에 투입할 항공기 700대를 인도차이나에 집결사킨 데 비해, 싱가포르 주둔 영국군은 저속에다 장비도 열악한 구식 항공기 150대로 대항했을 뿐이었다. 

41년 후반, 영국은 극동의 전쟁과 관련해서 중요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  즉,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극동으로 보내려던 항공기와 수송 선박은 러시아의  무르만스크로 가는 수송선단에 편입되었다. 

말하자면, 영국은 극동을 희생시키는 대신, 러시아 전선을 지원하고 대륙으로의 반격을 개시할 수 없는 영국의 무능력에 대한 크렘린의 노여움을 누그려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이 전쟁은 영일전쟁이 아닌, 연합국 세력과 주축국 세력의 세계대전이었다. 따라서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참고-

아서 브라이언트, 워 다이어리- 영국 육군참모총장의 일기로 본 제2차 세계대전, 플래닛 미디어, 2010. 3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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