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태국 국경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갈등?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0년 6월의 나치 독일에 의한 프랑스 패방이 일본에게 남방 침략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주었듯이 ,

40년 10월의 태국도, 일본의 인도차이나 북부 점령에 대해서 프랑스 식민당국이 변변한 저항을 못하는 것에서 자국을 위한 기회를 포착했다. 태국 군사독재자 총리 피분 송크람 Plaek Pibulsonggram 이 이것을 과거에 프랑스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포착했다. 송크람은 태국과 인도차이나 국경의 분쟁지역에 대한 자신의 공격에 대해서 프랑스가 심각하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군사행동에 돌입했다.

이 국경분쟁에 대해서 남방 침략의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이 중재를 결심했다. 41년 2월에 일본이 시암해와 남중국해에서 해상 무력 시위를 전개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그렇다면 중재의 대가로 일본이 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양국에 어떤 보상을 요구할 것인지가 관심사가 되었다. 일본이 노리는 것은 버마,인도양 그리고 싱가폴로 가기위한 통로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영국이 경고 신호를 보냈고, 미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전쟁에 대한 공포로 인해서 오스트레일리아는 말라야로 증원군을 보냈고, 네덜란드는 함대를 재소환했고, 언론은 일본의 전격적인 공격을 경고했다. 

도쿄의 미국 대사관도 자체 활동에 나섰다. 대사관은 일본의 외무차관에게, "만약 일본이 영국의 제국 교역망을 위협한다면, 이는 미국과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 경고했다. 충격을 받은 추이치 오하시 차관은 "이는 만약 일본이 싱가폴을 공격하면, 이곳이 미국과의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대사관의 유진 두맨 참사관 Eugene Dooman 은 "상황 논리가 불가피하게 이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고 답했다.

41년 2월의 미일 위기는, 암호해독 덕분에, 미국 지도자들이 일본이 당분간 태국,말라야,싱가폴 침략을 위한 기지 획득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알게되면서, 진정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참고-

W. Heinrichs, Threshold of War: Franklin D. Roosevelt and American Entry into World War II (New York, 1988).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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