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독소전쟁과 진주만 기습은 하나의 사건인가?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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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독소전쟁과 진주만 기습 그리고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정신 속에서, 1941년 독소전쟁과 진주만 기습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41년 1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셉 그루 일본주재 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다음을 강조했다. 

"우리는 유럽,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전쟁이 모두 하나의 세계 전쟁의 일부라는 점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이익이 유럽과 극동에서 모두 위협받고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의 방어전략은 모든 전선을 고려한 세계전략 global strategy 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총체적 안보에 기여할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전쟁에 임하면서 루스벨트는 세계전략, 이른바 대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전략 속에서 그의 독일 정책과 일본 정책은 연결되었고, 전자가 후자에 대해서 상위의 정책이었다. 

이같은 대전략을 고려하면, 1941년의 진주만 기습의 역사를 미국과 일본의 협상으로만 이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과 상대하면서도, 루스벨트의 주요 관심은 유럽에 있었고, 유럽에서의 상황변화에 따라서 일본 정책을 조율해 갔기 때문이다. 그의 대전략에서 유럽이 갑이었다면, 아시아-태평양은 을이었다.  

왈도 하인리히스 Waldo Heinrichs에 따르면, 루스벨트의 대전략에서의 독일정책과 일본정책의 연계는 특히, 1941년 6월 22일에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면서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루스벨트 정책의 역동성의 중심에는 소련의 생존이 독일의 패배를 위해 중요하며, 독일의 패배가 미국의 안보에 결정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따라서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이를 위해서는 일본을 꼼짝못하게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만약 일본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면, 41년 여름에 일본이 북방으로 진격하여 시베리아를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가 일본에게 희망했던 일이었고, 소련에게 군사적 재앙이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루스벨트의 대전략에서, 독소전쟁과 그 전황이 그의 일본 정책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은 루스벨트의 대전략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41년 미일협상에서 일본은 미국과만 잘 담판지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았지만, 그 배후에 유럽의 전쟁과 독일의 군사적 성공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현상이 존재했던 것이다. 41년의 극동의 위기가 미국과 일본의 협상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일의 갈등은 두 나라의 갈등을 넘어선, 세계적 갈등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41년에 루스벨트는 도조 히데키에게 이런 말을 하고자 했을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유럽이야!" (It's the europe, stupid)

참고-

W. Heinrichs, Threshold of War: Franklin D. Roosevelt and American Entry into World War II (New York,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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