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처칠은 진주만 기습을 사전에 알았는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94년 뉴욕타임즈의 한 관련 기사는 이른바 진주만 기습 음모론에 대한 팩트 폭행? 이다.

RICHARD W. STEVENSON, New Light Shed on Churchill and Pearl Harbor, The New York Times, 1994.

이 기사는 역사가 앤서니 베스트를 통해서, 94년에 새로 공개된 영국의 비밀문서를 소개했다.

문서에 따르면, 영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음모론이 주장하는 처칠이 루스벨트를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첩보가 루스벨트에게 전달되는 것을 교묘하게 막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앤서니 베스트는 당시의 영국해군 첩보국은 일본의 행동에 대한 위험 신호를 많이 확보했지만, 41년 12월초에 일본 해군이 하와이의 미군 기지 공격을 준비중임을 몰랐다는 것이 문서를 통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가령 영국 첩보국은 일본의 10척의 항공모함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파악했다. 1941년 12월 1일 4척은 대만 부근의 남중국해, 4척은 일본 본토 부근 해역에, 그리고 12월 4일에 나머지 2척은 진주만에서 서쪽으로 3000마일 떨어진 사이판 근처에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알고 있었다. 영국 첩보국이 남중국해에 있다고 파악했던 항모 2척과 본토 부근에 있다고 알았던 4척은 실제로는 교신 장비를 끄고, 진주만을 향해 항해 중이었다.  

베스트에 따르면, 이 첩보 문서는 "내부 열람용이었다." 따라서 정보를 조작하기 위해서 생산된 기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모론을 가지고 이 문서를 볼 필요는 없고, 바로 이 기록이 영국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사전에 알지 못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물론, 영국은 일본의 동향에 대한 많은 정보를 축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보들이 필연적으로 진주만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당시 영국 첩보국의 한계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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