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 일본에 적용되지 않은 이유?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일부 일본 역사가들이 30년대의 영국이 아시아에서 일본의 우세를 인정하고, 유럽에서와 유사한 유화정책을 일본에 대해서 실천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련 증거는 이 주장을 설득력없게 만든다. 비록 영국 총리실의 일부 관리들이 일본에 대한 유화정책을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 힘이 존재했다.

영국의 사고를 지배한 논리 중 하나는 일본에 대한 영국의 화해 정책이 미국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영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일을 망칠 수도 있었다. 

둘째, 영국이 일본을 동정하면, 후자가 소련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존재했고, 이 경우 유럽에서 독일을 견제하는 소련의 능력이 손상될 것이었다. 

셋째, 영국 정보 당국은 유럽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이상, 일본이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후진적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동북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두고 소련의 견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대한 유화가 중국을 화나게 만들 수도 있었고, 중국에서의 영국의 경제적 이익에 해가 될 수도 있다고 간주되었다. 

비록 영국은 일본에 대한 유화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결국 영국이 선택한 대일 정책은 유화도 일본에 대한 공개적 적대 정책도 아닌 것이 되었다. 따라서 영국은 일본의 예상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일본의 고립감을 심화시켰다.


출처-

Antony Best , Imperial Japan, in Robert Boyce,‎ Joseph A. Maiolo (eds.), The Origins of World War Two: The Debate Continues,  Palgrave; 2003, 63.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8/06 21:16 # 답글

    이때 영국의 국력이라면 무엇을 선택해도 일본 문제를 다루기 힘들었을거라 봅니다.

    중국, 소련, 독일, 미국, 아시아의 영국의 영향력까지 연결되었으니 진짜 지끈거렸을 겁니다.
  • 파리13구 2018/08/06 22:17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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