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국제정치의 대반전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독일의 리벤트로프와 소련의 스탈린,몰로토프>

세계가 큰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1939년에 드디어 소련이 주장하던 파시즘에 반대하는 인민전선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소련과 영국,미국,프랑스가 손을 잡는 대동맹의 결성이 될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39년 3월에 히틀러가 프라하를 포함하는 나머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 파산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즉시 유화정책을 포기했고, 독일에 대한 방어공세에 나섰다.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의 다음 침략 대상으로 예산되는 폴란드 안보에 대한 보장을 약속했다.

같은 해 5월, 소련은 극동의 노몬한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서 승리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7월에 일본과의 통상 조약의 파기를 통보하면서,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이상의 사건들은 반-파시즘 국가들이 파시즘의 도발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뿌린 것이 바로 8월 23일의 독소불가침 조약이었다. 

독소불가침 조약이 전세계에 준 충격이 가시기 전에, 9월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유럽에서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유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반파시즘 대동맹의 결성은 왜 좌절된 것인가?


참고-

Akira Iriye,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Asia and the Pacific, Longman Group,1993. 80.



덧글

  • 까마귀옹 2018/08/03 08:27 # 답글

    전간기, 특히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외교전을 보고 있자면.......아주 가끔은 ' 그따위로 했으니 2차 대전 이후에 세계 패권을 몽땅 잃어버려도 싸지 싸.'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 파리13구 2018/08/03 08: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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