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달리, 일본에 대한 유화정책은 없었다!"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7년 7월에 일본이 중일전쟁을 도발하자, 유럽에서의 나치 독일의 부상에 대해서와는 다르게, 

극동의 일본의 부상에 대한 유화정책은 결코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대신에, 서양 열강과 소련은 37년 7월 이후 적어도 2년 동안, 일본을 벌주고, 중국을 돕기 위해서, 전쟁 이외의 집단 안보와 개별국가의 제재 정책을 실천했다. 

그 결과, 1939년 9월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이 되면,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독일 보다 심각한 왕따가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은, 왜 서양은 독일에 대해서 유화정책을 실시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 강경하게 대처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참고-

Akira Iriye,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Asia and the Pacific, Longman Group,1993.   41.



덧글

  • asdf 2018/07/30 23:55 # 삭제 답글

    1. 일본의 객관적 국력의 허약함

    2. 바로 옆의 열강 자신들의 본토가 전쟁터가 되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멈

    3. 1차 대전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은 데다 열강이 내건 세력 구도를 무시하고 확장 일변도로 나간 것에 대한 견제 심리

    대충 이 정도가 떠오르네요
  • 파리13구 2018/07/31 06:55 #

    인종주의도 있다고 봅니다.
  • eggry 2018/07/31 08:43 # 답글

    1차대전에서 적국으로서 큰 결과를 낳은 독일에 비해 국소적 연합군으로써 비중이 적었던 일본이 전쟁을 벌일 경우 미칠 파장에 대한 과소평가 혹은 의도적 무시? 과소평가에는 인종주의적인 면도 있겠죠.
  • 파리13구 2018/07/31 08:15 #

    같은 서양 인종 간의 전쟁이 1차세계 대전이라는 재앙을 일으킨 반면,
    열등한 황인종과의 전쟁에서는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서양이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포스21 2018/07/31 09:16 # 답글

    확실히 초반에 영국이 고전한 걸 보면... 어느정도 인종적 편견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8/07/31 10:30 #

    그렇습니다.
  • 청법사 2018/07/31 09:20 # 삭제 답글

    거짓원인의 오류
  • 청법사 2018/07/31 09:22 # 삭제 답글

    인종주의는 극히 일부분이고, 아시아에선 미국이 국내정치적 저항이 별로없어 적극적으로 나왔기에, 영국 네덜란드 등도 강하게 나올수 있었던거죠
  • 청법사 2018/07/31 09:23 # 삭제 답글

    체임벌린이 당시 두개의 전선을 동시에 지탱할수없다라는 생각은 일본을 과소평가했던것과 전혀 다른 견해입니다
  • 파리13구 2018/07/31 10:30 #

    열등한 놈들에게 밀리는 망신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자존심 때문에. ㅠ
  • 전위대 2018/07/31 11:17 # 답글

    인종주의도 있었겠지만 1930년대 극초반 봉천군벌과 일본의 긴장 상태에서 영미가 일본에 보여준 우호적 스탠스, 1932년 1차 상하이 사변 당시 영미 외교관들이 오히려 중국군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친일적 태도라던가 1935년 국민정부의 법폐개혁 정책이 도모한 일본을 중국 경제권에서 배제시키고 미국 및 영국과의 경제권을 연계하려 한 시도에 대해서 미국 국무부가 일본을 자극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보인 극도의 거부감이나 영국 외무성이 파견한 프레더릭 리스 로스 특사가 국민정부에 제안한 만주국 승인을 대가로 한 일본 차관의 도입 방책 등등을 고려하면 유화 정책이 아주 고려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도 너무 나간 견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토 요코의 경우에는 미국의 대중 문호개방 정책 등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일본 군부와 외교부가 영미의 유화시도를 읽어내지 못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합니다.
  • 전위대 2018/07/31 11:21 # 답글

    물론 미국은 스팀슨 독트린 발표 등을 통해 일본에 대한 태도를 강경화하고 있었고 재무부가 중국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모습도 있었으며 미국의 문호개방정책이라는 것이 일본 내부 사정을 고려 하지 못한 근본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 등을 고려하면 영미는 가만히 있는데 일본이 미쳐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는 단편적인 시각도 납득은 되지 않습니다만 확실히 만몽을 영유하지 못하면 일본은 소련의 적화 시도에 압살될 것이라는 일본 군부의 공포에서 기인한 광적인 팽창정책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 제트 리 2018/08/03 11:56 # 답글

    그 때 당시에 만연한 순혈주의 그리고 일본의 자만도 한몫 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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