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통령의 힘 power 의 철학?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케네디 외교를 이해하는데 대통령의 성격 및 철학이 중요한 해석의 단서가 된다.

케네디의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존 케네디를 움직인 것은 힘에 대한 갈망이었다. 왜냐하면 힘이 승리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문제들을 개인화시켰고, 특히 그것들을 의지의 시험대로 간주했다. 케네디에게 정치란 위기와 경쟁의 문제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조 케네디는 탁월함 excellence 을 요구했다. 제임스 바버가 <<대통령의 성격>>에서 지적한 것처럼, 조 케네디는 "자식들에게 경쟁에 몰두할 것을, 1등 이외의 것에 만족하지 않게 압력을 가했다. 문제는 단순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었다." 

그 결과, 존 케네디는 투쟁정신을 발전 시켰으며, 승리를 갈망했고, 정력있는 남자가 되고자 했다. 

1960년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가톨릭 편견을 가진 자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우파로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유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케네디는 닉슨에게 신승을 거둔 후에, 대통령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케네디에게 흐루쇼프의 소련의 도전은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도전에 다름아니었다. 


참고-

Thomas G. Paterson, "Bearing the Burden: A Critical Look At JFK’s Foreign Policy",  Virginia Quarterly Review (Spring 1974)

1961년 현재 19세기인 1894년생인 니키타 흐루쇼프(67세)는 40대의 1917년생 존 케네디(44세)를 애송이 취급했다. 

이렇게 케네디는 애송이 취급하는 흐루쇼프와 소련의 도발에 대해서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할 기회로 간주하는 케네디의 충돌은 심리적으로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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