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63년에 케네디가 잃어버린 기회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케네디와 드골>

[63년]베트남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정세?

[잃어버린 기회]

1963년 5월, 고딘디엠 정권이 불교도를 폭력으로 탄압하자, 남베트남 정정은 불안해 지고, 이를 지켜보는 케네디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8월 케네디 정부는 고딘디엠 제거를 위한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는 문제를 고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이공의 쿠데타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정세가 처음으로 조성되었다.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전쟁 없이 해결되었고, 소련과 중국의 오랜 적대감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렀으며, 미국과 소련이 처음으로 냉전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소의 긴장완화 분위기가 1963년에 베트남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회가 되었다. 63년에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이 평화 공세를 주도했다. 

드골은 8월 29일의 기자회견에서 다음을 주장했다. 드골은 베트남 전체에 대한 프랑스의 유대를 언급했다. 그는 베트남 민중이 외세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평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베트남 분쟁의 협상을 통한 해결을 위해서 드골은 미군 철수와 남베트남 중립화 그리고 남북 베트남의 경제,문화 교류를 제안했다. 1) 

고딘디엠과 고딘누가 드골의 제안에 동조함에 따라, 드골은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폴란드 외교관을 통해서 하노이의 의사를 타진했다. 

만약 베트남 중립화를 전제로 한 드골의 제안이 현실화되었다면, 미국은 자신이 더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남베트남이라는 늪에서 우아하게 철수할 수 있는 명분을 발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당시 케네디의 한 참모는 드골의 제안을 전제로 한, 가상의 3각 외교를 제안하기도 했다. 즉,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철수하면, 소련이 쿠바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강대국 프랑스가 베트남이 모든 외세의 압력으로 부터 자유로운 국가가 되는 것을 보장한다. 이렇게 미국과 소련이 체면 손상 없이 모험적인 해외 개입에서 벗어나게 되며, 보다 협력적인 소련이 공격적인 중국에 대해서 국제문제에서 우위를 확보하며, 드골은 국제사회의 골칫거리인 베트남 문제를 해결했다는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참고-

1) Fredrik Logevall,Fear to negotiate: Lyndon Johnson and the Vietnam War, 1963-1965, Dissertation, Yale University,1993. 46. ; George C. Herring, America’s Longest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50–1975,p.101.

2) George C. Herring, America’s Longest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50–1975,pp.100-101.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