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아이젠하워의 국방정책 탄생 배경?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아이젠하워의 국방정책은 뉴룩 정책 “New Look” 이라 불린다.

그 핵심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은 래드포드 합참의장이었다고 한다.

1953년 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국방예산에 대한 근심을 토로하자, 래드포드가 제시한 것이 바로 뉴룩이었다는 것이다.

뉴룩에 따르면, 다양한 군사적 긴급사태에 대한 여러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에, - 전략 핵전쟁,재래식 전쟁,제한 핵전쟁,게릴라 전쟁- 미국은 적에게 전략적으로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을 계획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정책은 보다 포괄적인 대응 체제 보다 비용이 덜 나갔다. 

래드포드의 논리를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1954년 1월 12일의 유명한 "대량보복" “massive retaliation” 연설에서 소개했다.  이 연설에서 덜레스는 어디에서든,언제든 소련의 도발에 대해서 전략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라 위협했다. 1)  

50년대에 헨리 키신저는 아이젠하워 정부의 대량보복 정책을 1930년대의 프랑스 마지노선과 유사한 오류를 반복한다고 비판했다. 대량보복이 미국 정책의 마비를 초래한다는 비판이었다. 

<<1936년, 프랑스군 총참모부는 전면전에 대비했고, 이 경우 방어에 나선다는 것 이외의 독트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총참모부는 프랑스-독일 국경에 대한 직접 공격 이외의 다른 형태의 공격에 대한 비상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각각의 작은 변화로 전략적 균형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작은 변화란 그 자체로는 전면전의 가치가 없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히틀러가 라인란트를 점령했을때, 프랑스 지도부는 어쩔 줄 몰랐다. 프랑스는 총동원령의 결과에 전율했지만, 자신의 전략 독트린은 어떤 다른 군사적 조치를 제안하지 못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전략의 경직성의 처벌은 군사적 재앙이었다.>> 2) 

키신저는 대량보복 전략의 경직성이 유사한 미국정책의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키신저는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의존, 특히 세계의 변경 "grey areas"에서의 그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믿었다. 소련의 핵무기 보유가 증가하고, 발사 체계를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핵전쟁은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소련의 적대를 막는데도 같은 이유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었다. 더 나아가, 중국-소련 전략의 심리적 목표는 세계의 변경 지역에서 전면전을 감행하기에는 미약한 도발을 자행하는 것이 될 것이었다. 이러한 미약한 도발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은 그 대안이 미흡했다. 이러한 미국 전략의 교리적 경직성이 중국-소련 진영이 야금야금 세계의 균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키신저는 또한 미국의 군사전략이 외교적 동맹 정책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가령, 미국의 전략은 태국에 대한 공격이란 상황에 직면해서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태국을 지역적으로 방어해야 하는가 아니면, 중-소 진영에 대한 전면전에 나서야 할까? 키신저에 따르면, 대량보복 전략은 미국의 동맹국의 힘도 잠식시키는 것이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전면적 핵전쟁에서 아무런 군사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런 핵전쟁의 공포 앞에서 전율하게 될때, 그들의 선택이 항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번더 키신저는 30년대 프랑스 전략의 오류를 상기시켰다.

<<그것이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을때, 이렇게 전간기의 프랑스  동맹체계가 붕괴했다. 왜냐하면, 동쟁의 정치적 목적과 군사 전략이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동맹체제의 목적은 중부 동부 유럽의 약소국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군사적으로 볼때 동맹은 프랑스 측의 공격전략을 암시하는 것이었고, 양면전만이 독일의 중동부 유럽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지노선의 건설로, 프랑스와 그 동맹국의 군사 협력의 조건이 사라지게 되었다. 독일이 도발한 각종 위기에서, 프랑스는 외교정책과 군사전략의 모순 사이에서 방황했고, 그 동맹국들은 자살적 저항과 항복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3) 

키신저는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과 외교적 동맹정책의 모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냉전에서의 미국의 지위도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핵무기 사용의 결과에 대해 전율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사용을 주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의 마비는 1954년 인도차이나에서 명백했다. 대량보복에 대한 미국의 의존이 프랑스의 디엔비엔푸의 패배를 막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키신저는 1956년의 수에즈 위기에서도 핵무기가 무용했다고 보았다. 대량보복 전략은 헝가리 같은 소련 위성국 봉기에 미국이 대처했을 때도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미국의 대량보복 전략과 프랑스의 마지노선의 역사적 유추를 통해서 키신저는 미국의 전면전을 유발하지 않을 정도의 국지적 도발에 대한 대응책의 부재에 대해 개탄했다. 이러한 소규모의 국지적 도발을 통해, 공산진영이 조금씩 끊임없이 세력균형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1) James S. Olson,‎ Randy W. Roberts, Where the Domino Fell: America and Vietnam 1945 - 2010,Wiley-Blackwell; 6 edition,2014. 35.

2) [Kissinger,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19-20]

3) [Kissinger,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p.238]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7/04 14:17 # 답글

    키신저의 평가보다는, 그림이 더 끌렸습니다. ㅎㅎㅎ;

    이 그림이 20년 후에는 작은 베트남 이야기의 북베트남이 웃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은 망가진 무기를 들며 울며불며한 모습일듯....
  • 파리13구 2018/07/04 14:18 #

    소련이 권총으로 위협하는데, 미국은 핵무기로 응수한다는 것은 모순임을 지적한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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