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키신저, 사이공 함락에 대한 소감은?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74년말부터 헨리 키신저는 자신의 정치적 경력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업적이라 알려진 것, 특히 베트남의 휴전이 끝장날 것이라는 나쁜 조짐들에 전율했을 것이다. 포드 정부 내에서 이른바 네오콘이 키신저를 찍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사이공 체제의 앞날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다음 사건들이 있었다.

1974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 민주당이 압승했다.
같은 달, 
미국 의회, 1975년의 남베트남을 위한 군사원조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했다 : 15억 달러에서 7억 달러로 삭감시켰다.

1975년

3월
미국 상하 양원이 남베트남에 대한 추가 지원안을 거부했다.
4월
크메르 루즈, 프놈펜에 입성. 킬링 필드 시작.
4월 21일
남베트남 티우 대통령 사임.
4월 24일
포드 대통령, 투렌 대학 연설에서, 미국에 관한 한, 베트남전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4월 29일,
결국 사이공 미국 대사관 인력이 헬기로 철수했다.

이상의 사건들로 인해서, 키신저의 명성이 상처를 받았다. 키신저는 “나는 3주 만에 나라 두 개(캄보디아,베트남)를 잃은 유일한 국무장관이다.”라고 하면서 자책했다. 

4월 30일, 침울하고, 화가난 헨리 키신저는 남베트남 공산화로 인한 파장이 미국에게, 특히 포드 정부에게 정치적 치명타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 지붕에서 미국 및 베트남 민간인들의 광기어린 탈출 소동이 전세계에 텔레비전 중계되자, 키신저는 백악관의 이스트 룸에서 호통을 쳤다. 그는 고위 관리들에게, 미국은 동남아에서 발생한 일로 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 말했다. 

키신저에 따르면, 미국은 앞으로 몇 달 동안 적에 의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미국 대중이 국제문제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이 부여하는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의문시했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 외교정책의 확고함이 부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의 비극으로 적이 미국의 불행을 축복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 될 것이었다. 

파리 협정에서의 자신의 업적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끝장난 것에 화가나고 좌절한 키신저는 의원들을 비난했다. 정치가들이 미국의 전쟁 개입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 상승에 부화뇌동했다는 것이었다. (즉 공산화의 책임이 사이공에 대한 추가 지원을 거부한 미국 의회에 있다는 것이었다. 반전여론에 굴복한 의회에 공산화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키신저는 이것이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운명을 따르게 될 것이라 저주했다. "그는 뮌헨 협정이 있었던 1938년 동안 영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18개월 후에 그는 끝장났다."

이상과 같이 헨리 키신저는 뮌헨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사이공 함락에 대한 그의 소감을 표현했다. 


참고- 

Robert D. Schulzinger, A Time for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41– 1975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27-328.   



덧글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7/04 14:26 # 답글

    키신저를 비판한 주장 중. 이 파리 협약과 노벨평화상을 거론한데... 정작 키신저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에 뒤집어버렸고. 네오콘이 포드 정부에 존재했다는 것과 키신저의 뒤통수를 친 것, 미국 의회와 고위 관리들한테 분노를 표했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궁금한 것은 키신저가 파리 협정 이후의 남베트남을 어떻게 다룰려 했을까? 키신저라면 국제정치의 전문가 of 전문가고, 평화협정의 무의미함과 베트콩과 공산주의자와 협상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텐데... 그조차도 칠레와 관한 문제는.... 음....
  • 파리13구 2018/07/04 14:28 #

    키신저의 주장은,
    워터게이트만 없었다면,
    파리협정에 대한 북베트남의 위반을 참혹하게 응질할 것이었지만,
    닉슨의 몰락과
    의회의 원조 기피 때문에,
    남베트남이 공산화되었다는 겁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7/04 14:35 #

    다니엘 엘스버그의 폭로, 거센 반전 열기, 장기전의 피로와 염증도 컸지만 워터게이트... 워터게이트는 닉슨이 잘 대처했더라면 커지지 않았을텐데 거짓말을 너무 해버려서 몰락했고. 남베트남도 무너졌고. 이 시기의 미국은 복잡한 칵테일이네요.
  • 파리13구 2018/07/04 14:36 #

    베트남 공산화를 키신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7/04 15:05 #

    그러니까 복잡한 칵테일이죠. 이건 키신저가 전권을 쥐었어도 해결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 파리13구 2018/07/04 15:06 #

    근거가 뭡니까?
  • 2018/07/04 15: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파리13구 2018/07/04 15:22 #

    네, 동의합니다.

    키신저라도 대세를 막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과

    공산화를 키신저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다른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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