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샤를 드골의 위대함은?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역사상 드골만큼 존버(0나 버틴다)? 의 화신은 없을 것이다.

그가 프랑스 패전의 절망 속에서도 레지스탕스 지도자가 된 것도, 알제리 사태로 인한 내전의 위기에서 프랑스를 구한 것도, 

제4공화정의 혼란을 잠재우고, 대통령 중심제인 제5공화국 탄생을 주도하면서 프랑스 정치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떤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고, 원칙이 정해진 이상 존버했기 때문에, 그가 프랑스 현대사 최대의 위인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꼴통 이미지에도 불구하고,그는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고, 유연하게 대처했는데, 그것이 바로 20세기 최대 정치운동 중 하나인 탈식민이었다.

알제리 위기를 경험하면서, 탈식민화는 하나의 시대적 대세임을 드골은 깨달았다. 특히 프랑스의 막강한 무력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의 민족들의 열망을 군사력으로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탈식민화에 대한 무력의 해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출하게 된 민족자결주의의 힘을 무력으로 해결 불가능하다고 샤를 드골은 확신했다. 

알제리 사태를 정리한 이후, 드골은 자신의 깨달음을 대서양 건너의 "우매한?" 앵글로 색슨의 미국에게 가르쳐 주려 했다. 미국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군사력으로 베트남의 탈식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드골이 제안한 것은 베트남 중립화였다.

60년대 초반 케네디와 린든 존슨의 미국이 전쟁을 미국화하는 가운데, 나토의 핵심 동맹국 프랑스의 지도자 샤를 드골이 베트남 분쟁의 평화적 해결,즉 베트남 중립화를 주장하면서, 

미국-프랑스 관계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윈스턴 처칠에게 드골이 그럼에도 지고 가야할 "로렌의 십자가" 였다면, 케네디와 존슨에게 드골은 갈리아의 골치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식민화라는 역사의 대세를 무력으로 막을 수 없다는 드골의 깨달음은 미국 정부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마땅했다는 것은 이후의 역사가 증명해 준다.



덧글

  • 2018/06/26 11: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6/26 11: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6/26 12: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6/26 12: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6/26 12: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6/26 12: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