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히틀러와 호치민의 차이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비극으로 끝난것은 베트남을 너무 몰랐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60년대에 국무부의 베트남 전문가 폴 카텐버그는 딘 러스크,맥나마라 그리고 다른 고위 베트남 정책 결정자들과의 회의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한시간 반동안 그들의 회의를 들었다. 회의 참석자들 중 단 한 명이 자신이 말하는 주제에 대해 아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이 오싹했다. 그들은 베트남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들은 베트남의 역사를 잊었다. 그들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일시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회의가 진행 될 수록 나는 다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신이시여, 우리는 엄청난 재앙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무지의 결과, 호치민은 히틀러가 되었고, 60년대의 북베트남은 1930년대 유럽의 독일이 되었다. 양자는 약간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이가 엄청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다. 

호치민과 히틀러는 전체주의 지배자였고, 영토 확장을 원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야심과 힘은 호치민을 능가했다. 히틀러는 모든 유럽의 굴복을 원했고, 이를 위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히틀러는 유럽의 독일 민족을 통일하는 것만 원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동기를 독일민족의 민족자결로 인식한 것이 뮌헨협정에서의 체임벌린 최대의 오판이었다. 그는 대서양에서 우랄 산맥에 이르기까지의 유럽을 통치하기 원했고, 미국에게 불리한 세계적 세력균형의 교란을 가하려 했다. 

반대로, 호치민의 야심은 베트남의 통일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우호 정권의 수립이었다. 호치민의 군사력은 중국과 소련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의 그것과 비교 불가능했다. 


참고-

Jeffrey Record, Making War, Thinking History: Munich, Vietnam, and Presidential Uses of Force from Korea to Kosovo, Naval Inst Pr; 1st edition (April 1, 2002),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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