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봉쇄정책의 성공?"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6년 프랑스와 베트남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래,

49년의 중국 공산화를 계기로

미국은 도미노 이론이라는 프레임을 전제로, 베트남 분쟁에 서서히 개입하게 되었다. 

냉전의 시각에서, 미국은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지도를 받는 국제 공산주의의 침략을 어디 지점에서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1930년대의 뮌헨 협정의 교훈도 작동했다. 현재의 방관이 미래에 더 큰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 말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침략에 직면해서, 미국은 공산주의 도미노가 중국에서 무너지기 시작해서 베트남을 경유, 저 멀리 인도,중동과 호주,뉴질랜드까지 휩쓰는 사태의 도래를 우려했다.

1975년 4월의 베트남 공산화로 미국은 남베트남을 자유 진영에 남긴다는 약속을 지키는데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1979년의 중국-베트남 전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46년 전쟁 발발 이후, 중국은 베트남 공산주의에 대한 최대 후원세력이었다. 당시의 소련 스탈린은 베트남의 독립투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이런 전통적 혈맹관계의 두 나라가 인도차이나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인 것은 새로운 차원의 봉쇄의 힘이 작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산주의 단일 대오의 침략에 의한 동남아 공산화를 미국이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봉쇄의 프레임이었다면, 베트남 공산화 이후는 공산진영 내부의 이이제이에 의한 봉쇄가 가시화 되었다는 것이다. 공산화의 물결이 인도차이나에서 저지되면서, 중국과 베트남이 서로 상대방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 무력 동원을 불사하는 국제정치 환경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공산화 이후 인도차이나에서의 봉쇄는 이전이 미국 주도였다면, 이후는 이이제이가 작동하게 되었다면,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잃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결국 중국혁명 이후의 공산화의 물결을 인도차이나에서 봉쇄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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