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린든 존슨, 미군 증원 요청을 거절한 이유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67년 3월 괌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 최고 지휘부가 회의를 열였다. 

회의에서 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는 보수적이었고, 확약을 하지 못했다. 그는 20만명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방장관 맥나마라가 웨스트모어랜드의 소모전 전략이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라 주장하고, 현재의 전쟁 전략을 비판했다.

대통령은 웨스트모어랜드가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적의 전력을 파괴하여 분수령에 이르게 했고, 이렇게 적이 남베트남에 투입하는 규모 이상의 적 전력 손실을 가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전쟁 전략에 대한 웨스트모어랜드의 주장은 북베트남이 남부로 보내는 적 투입량 이상의 적을 분쇄하면, 소모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우리가 사단을 추가로 배치하면, 적도 사단을 추가로 배치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전쟁은 언제 끝납니까?" 뿐만아니라 미국 총사령관인 존슨 대통령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적은 중국에 의용군을 요청할까요?"라 질문하자, 군 지휘부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웨스트모어랜드는 적이 남부에 저항 세력을 이미 8개 사단 규모로 배치 완료했고, 4개 사단을 추가 배치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67년 현재 47만 명의 미군을 가지고, "미국은 베트남에 고기 분쇄기를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 장군들이 주장했다. 하지만 10만 명을 추가 파병해도, 전쟁은 3년 더 계속될 것이고, 심지어 미군을 총 66만 5천명으로 늘려도, 앞으로 전쟁을 2년 더 해야 한다고 예상되었다. 

미국 합참의장 휠러는 미군 증강이 국제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견제를 위한 북한의 남한 공격이 예상되며, 소련이 베를린에서 도발, 미군이 유럽 주둔 세력을 증강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고, 소련,중국,북한 자원병들이 남베트남에 투입될 수도 있고, 심지어 중화인민공화국의 베트남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 혹은 동남 아시아에서의 도발을 경고했다. 

군 지휘부의 보고를 받은 존슨 대통령은 회의적 입장을 가지게 되었고, 67년 4월에 군의 증원요청을 거부했다. 


출처-

Buzzanco, R. (2006) The Politics of Escalation in Vietnam During the Johnson Years, in A Companion to the Vietnam War (eds M. B. Young and R. Buzzanco), Blackwell Publishing Company, 185. 



덧글

  • 디디 2018/07/16 13:28 # 답글

    적절하지 않은 전략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소모전은 확실히 위험한 결과를 불러오는것 같네요..
    하노이 정부에게 베트남 전쟁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에 비교적 느긋했던 반면,
    미국은 엄청난 전비를 소모해가며 명분이 부실한 타국의 내전에 개입한 상태였기에
    적을 단기간에 이념적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고 더욱 조급했던것 같아요.
    그래서 전략적인 면에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화력을 밀어붙인 소모전에 집착하지 않았나 하는생각이드네요.
    베트남 역사를 공부하는 초보지만 개인적인 생각남겨봐요..ㅎㅎ
  • 파리13구 2018/07/16 13:31 #

    하노이를 미국에 대해 군사적인 승리가 아니라 정치적 승리를 거두려고 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하노이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승리하려 했습니다.

    68년 테트 공세를 즈음해서, 하노이는 정치적 승리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 디디 2018/07/16 13:42 # 답글

    깔끔한 정리와 답변 감사합니다
    정치적 승리가 언론보도와 반전여론에 영향을줘 미군 철수를 유도하게 만든건가요..?

    정치적 승리의 기회를 잡은건 케산전투의 영향이 큰가요? 케산전투가 테트 공세 후 반전여론에 더 힘을 실어준거겠죠..? 질문이..좀 많네요...하핫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파리13구 2018/07/16 13:47 #

    케산 전투는 테트를 위한 하노이의 양동작전으로 보면 됩니다.

    미군을 케산 주위에서 결집해 놓고,

    하노이는 남베트남 전역에서 대규모 공세에 나선 것입니다.

    테트 이전 미군은 전쟁에서 곧 이긴다고 주장했지만,

    테트 이후 전쟁의 조기 종결이 어려워지자, 반전 여론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되고,

    하노이는 정치적 승리를 위한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 디디 2018/07/16 13:57 # 답글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ㅡ^//
  • 파리13구 2018/07/16 13: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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