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미국에 대한 호치민의 짝사랑?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프랑스의 식민통치하의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에게 미국은 일종의 귀감이었다. 외세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여, 강대국이 된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호치민도 이런 전통에 속했다. 1912년 미국 뉴욕을 여행 중일 동안 호치민은 공산당 출판물을 위한 여러 편의 글을 썼다. 글을 통해서 장래의 베트남 지도자는 미국의 인종주의와 집단 폭력을 비난했고, 미국 공장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고발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인종주의 종식을 위해 투쟁하는 미국인들을 칭찬했다. 대조적으로 그가 칭찬한 유일한 유럽인들은 바로 공산당원들이었다.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교범에서 호치민은 미국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을 했다.  소련 공산당 간부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그는 사회주의 혁명 보다는 민족문제를 중시했다. 다시 말하자면, 호치민은 베트남이 계급관계를 철폐하기 위한 사회주의 국제운동에 동참하는 것 보다는 독립국이 되는 것을 보다 중시했다.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을 위해서 미국 혁명을 귀감으로 삼았다. 그는 미국 혁명의 원인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설명했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경제발전을 통제하기를 원했고, 따라서 영국인들을 몰아냈다는 것이다. 베트남인을 위해 미국 혁명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그는 미국인민의 용기와 통합을 강조했다. 호는 특히 미국 독립선언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독립선언이 주장한 인민은 국가의 최소한의 개입 속에서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 강한 인상을 호치민이 받았다. 물론 그는 미국이 여전히 이 가치들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했지만, 그 이상만은 찬양할만 했다. 

역사가 마크 브래들리에 따르면, 호치민은 미국에서 베트남 혁명을 위한 완벽하지는 않은 교범을 발견했다고 한다.


참고-

ANNE FOSTER,  Before the War: Legacies from the Early Twentieth Century in United States-Vietnam Relations, in Marilyn B. Young and Robert Buzzanco(eds.), A Companion to the Vietnam War, Wiley-Blackwell (January 23, 2006),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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