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소련은 친 親-프랑스 세력이었나?"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난 이글루스에서 이른바 "키신저빠"로 분류되지만,

기록을 읽어가다가 보면, 키신저가 틀린 것도 가끔 발견하기도 한다.

가령, 1959년 키신저가 소련을 혁명세력으로 규정한 것이 그 예에 속한다.  키신저는 1959년 <안정을 위한 모색>이란 글에서, 소련은 자신의 안보에 대한 근심을 해결하기 위할 뿐이며,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 정통성이 있고,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키신저, "소련은 혁명 세력이다." 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1)

하지만, 적어도 베트남에 관한 한, 1950년대 동안 소련은 혁명세력이기 보다는 현상유지 세력이었다는 점이 최근의 연구 성과이다. 2)

특히 54년 제네바 협정 이후, 현상유지 세력 소련은 남베트남에서 프랑스 세력이 유지,보존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1955년, 미국을 등에 업은, 반불주의자인 고딘디엠 치하의 남베트남에서 프랑스 세력이 급속히 쇠퇴하는 가운데, 소련은 이 곳 상황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55년 5월에,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보고서에서 몰로토프는 남베트남에서 미국의 행동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이 베트남에서 프랑스 제거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베트남에서의 프랑스의 경제적 지위를 하락시키고 있고, 군대에서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 있고,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 외상은 현 상황을 베트남과 중국 그리고 프랑스 "친구들" French 'friends' 과 협의해야 하며,  미국의 행동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몰로토프는 파리의 소련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프랑스 친구들 French 'friends 의 의견을 구하여,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공격적 행동을 폭로하는 행동에 나서거나 혹은 유사한 적절한 조치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모스크바는 베트남에서 프랑스 세력이 몰락하는 대세를 저지할 수 없었다. 3) 

50년대 후반, 남베트남에서 미국이 프랑스 세력을 대체하자, 소련은 기존의 현상유지 정책을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의 확대개입을 견제하는 베트남 관여 정책을 향해 나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950년대에 소련은 적어도 베트남에서는 혁명세력이 아닌, 보수적 현상유지 세력이었다.

1) Kissinger, "The Search for Stability," Foreign Affairs,XXXVII (July,1959)

2) Gaiduk I.V. (1998) Developing an Alliance: The Soviet Union and Vietnam, 1954–75. In: Lowe P. (eds) The Vietnam War. Problems in Focus: Manchester. Palgrave, London, 139-140.

3) 위의 논문, 140. 



덧글

  • 울산왜성 2018/06/06 02:41 # 답글

    소련은 혁명 세력과 현실주의적 현상유지 세력의 사이 쯤 아닐까요? 혹은 개별 사안마다 사안을 다루는 사고의 바탕이 둘 중 하나를 오락가락했을까요? 궁금하네요
  • 파리13구 2018/06/06 06:01 #

    베트남 문제에만 한정하면,

    소련은 서양과의 평화공존과 베트남 혁명의 지원이라는 가치 중에서

    전자를 더 중시했습니다.

    물론, 65년에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수정될 것이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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