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관계] 고립 없는 봉쇄정책?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한국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당시의 양국관계를 상징하는 것은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 덜레스 국무장관이 중국 총리 주은래의 악수 제의를 거절한 것이었다.

주은래 평전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 "1954년 봄이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포연이 가라앉은 지 겨우 아홉 달,덜레스가 적장(敵將)이 내미는 손을 마다할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저우언라이는 태연하게 적장 덜레스에게 악수를 청했다.저우의 외교관으로서의 노련함과 인간적인 포용력과 겸손함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 사건이 주은래에게 상처가 된 모양이다. 17년 뒤, 키신저가 주은래를 만났을때, 중국 총리 주은래가 키신저를 맞으면서, 키신저도 중국 공산주의자와 악수를 거부하는 미국인들 중 한 명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50년대가 경과하면서, 미국은 아시아의 강대국 중국이라는 실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당시 미국은 봉쇄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의 힘을 인정하여 양국관계 개선의 불씨를 만드는 묘안을 고심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고립 없는 봉쇄정책이었다. CONTAINMENT WITHOUT ISOLATION

사전에 따르면, 고립없는 봉쇄정책이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자들 중 온건파들이 주장했던 중국 정책이었다. 그들은 중국의 적대행위와 팽창에 대해서 봉쇄정책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중국과 미국의 접촉을 늘리고, 양국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것이 바로 고립 없는 봉쇄정책이었다. 


참고-
Robert Sutter, HISTORICAL DICTIONARIES OF U.S. DIPLOMACY - United States–China Relations, 2006,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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