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분쟁과 대만의 장개석의 대응? Le monde



냉전의 역사에서 장개석하면, 한국의 이승만과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반공투사이다. 

모택동의 중국과 그를 지원한 소련은 반공주의자 장개석에게 원수라고 할 수 있다. 모택동과의 국공내전에서 소련은 장개석에게 빅엿? 을 날린 바 있었다. 

하지만, 60년대를 경과하면서, 중소분쟁이 고조되고, 60년대 말에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화해로 나가면서 , 장개석은 상황 변화에 따른 새로운 외교노선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앙 자이와 루핑 샤오의 관련 논문, 정치적 계산의 변화 : 대만-소련 비밀 회담 ,1963-1971 에 따르면,

중소분쟁과 미중화해의 시대에 대한 장개석의 외교적 대응을 알 수 있다.

Xiang Zhai and Ruping Xiao.  “Shifting Political Calculation: The Secret Taiwan-Soviet Talks, 1963-1971.”  Cold War History 15:4 (2015): 533-551.  DOI: 10.1080/14682745.2015.1031115. 

공동 저자들은 대만의 장개석과 그의 아들 장경국이 대만 체류의 소련 언론인 빅터 루이 Victor Louis와 비밀 협상을 주도했음을 구명했다.  루이는 KGB 요원이었다. 중소동맹이 균열되고, 미국이 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정책을 수정하자, 대만의 장개석은 소련과의 협력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는 것이다. 

비록 비밀협상은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저자들은 시도에 의미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장씨 부자는 소련과 손을 잡아서, 국제 무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에 맞서려고 했다. 그들은 심지어 소련과 중국 본토에 대한 무력 개입을 시도하려고 했다. 대만은 주요 동맹국 미국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서 안보 증진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련-대만 회담을 추진한 장개석의 주요 동기는 중국 공산 체제의 파괴, 중국 본토에 대한 공산당 지배에 대한 저항 그리고 대만의 안보 증진 등 이었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중소분쟁이 고조되면서, 대만은 소련에 대한 지정학적 관점을 변경했다. 63년부터 장개석의 측근과 빅터 루이가 비밀 협상을 시작했다. 

이렇게 대만은 소련과의 화해를 통해서 미중화해에 따른 외교적 상처를 치유하려 했지만, 71년 7월 키신저가 베이징을 비밀 방문하면서 미중화해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장개석이 결국 포기한 외교카드가 되었다는 것이다.  



덧글

  • 나도사랑을했으면 2018/06/05 22:38 # 삭제 답글

    그래도 유엔 상임이사국중 2개국간의 협상이네요. 소련과 중화민국.

    뭐 곧 대륙이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고 소련도 뒤에 러시아로 바뀌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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