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린든 존슨의 미군 파병 결정의 동기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사진- 65년 3월에 베트남 다낭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

역사 교육자 심용환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미국은 왜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나" [심용환의 근현대사 똑바로 보기]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면,

미국의 침략성과 능동성이 전제된 것 같은 인상을 받기 쉽다. 미국은 팽창적,공격주의적 의도를 가지고, 베트남을 신식민지로 유지하기 위해서 베트남 전쟁을 도발한 것인가?

베트남전이라는 미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 하나의 가능성에서 현실이 된 것은 1965년 3월로, 최초의 미군 지상군인 3500명의 해병대가 다낭에 상륙했을 때 였다. 

당시 미국 정부는 지상군 파병이 일시적 조치라고 애써 강조했다. 테일러 대사는 남베트남의 판후이깟 (Dr. Phan Huy Quat) 정부에게 파병 결정을 상의하지도 않았고, 지상군 배치는 순수히 방어적이며, 본질적으로 일시적인 것이라 알렸다. 1) 

하지만 막후에서는 지상군 증파를 준비 중이었다. 3월 말 린든 존슨의 증파 결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민간인 참모들의 증파 지지였고, 특히 3월 21일의 국가 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가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가 중요했다. 번디는 지상군 파병에 찬성하며, 다음을 주장했다. “미국 정치라는 관점에서 어떤 것이 더 타당한가? 현재 패배하는 것인가 아니면 10만 명을 투입한 이후 지는 것인가? 당연히 후자이다.”2) 

맥조지 번디의 주장을 검토해 보면, 지상군 파병의 주장은 남베트남에서의 승리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번디의 주장은 파병을 통해서 미국의 명예를 훼손하는 굴욕적인 패배를 일단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즉 남베트남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막기 위해서 존슨 정부가 지상군 파병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번디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우리가 종이호랑이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며, 미국이 개입을 공언한 이상, 큰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만약 필요하다면 중국과의 일전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

즉, 린든 존슨의 지상군 파병 결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베트남에서 미국의 승리가 아니라, 굴욕적인 패배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던 것이다.

1)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 343.

2)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 344.
 
3)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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