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외교정책과 인권의 문제? Le monde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

<키신저와 모택동> - 문화대혁명 동안 모택동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내몬 인간백정이었는가? - 민주주의가 인간백정과 손을 잡는 것이 비도덕적이라 한다면, 악마와의 데탕트가 만들어 낸 평화공존은 비도덕적이란 것인가? 외교에서 도덕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자신의 혈육을 잔인하게 죽이는 인간 백정에 대해서 민주주의 국가가 손을 내밀 수 있느냐는 비판은 타탕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역사에서, 외교정책과 인권의 문제에 대한 다른 해석에 기초한 정치가들이 있었고, 실제로 그들이 세계평화에 공헌한 사례가 있는데,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70년대 초에, 키신저가 테탕트 정책을 실천할 동안, 만약 브레즈네프의 소련과 모택동의 중국의 인권 문제를 절대적 가치로 간주했다면, 냉전의 데탕트는 가능했을까? 

소련의 인권문제에 대한 키신저의 인식은 어떤 것이었는가? 미국외교의 목적과 인권이 충돌할 경우, 우선시 되는 가치가 있는가? 데탕트와 소련 인권문제는 어떤 관계가 있었는가?

키신저의 데탕트에 대한 소련 물리학자 사하로프 박사의 비판은 외교에서 인권의 가치가 소중함을 강조한다. 소련 물리학자 사하로프는 소련에서의 학문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소련-미국 데탕트의 위협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데탕트가 사실상 소련 정치국에게 자신과 반체제 세력을 탄압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부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소련 인권문제에 대한 키신저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의 추방에 대한 대처를 통해 알 수 있다. 키신저는 데탕트의 필연은 소련 국내 구조의 승인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데탕트는 전면적 핵전쟁을 막자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키신저의 주장은 솔제니친 사건이 미소협력의 지속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협조 체제로서의 미소 데탕트는 양국의 각각 다른 국가의 국내 정치 과정에 대한 자유방임적 입장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1)

그렇다고, 키신저가 인권 문제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타국의 인권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심각하게 간주할 문제라는 것이었다. 키신저는 히틀러의 독일의 반유대주의 박해를 피해서 미국에 망명한 독일계 유대인 출신이었다. 그런 키신저의 개인사적 배경을 보면,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키신저가 유대인 문제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 가능하다. 그렇다면, 유대인 문제가 실제로 대두되었을때, 이에 대한 유대인 키신저의 대처는 어떤 것이었을까?

1973년 3월, 소련내 유대인 인권이 미국 외교의 문제로 대두되었다. 3월 1일,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가 백악관을 방문, 키신저 안보보좌관과 닉슨 대통령에게 소련 유대인을 위해 미국이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대인 키신저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을까?

우선 닉슨은 소련내 유대인 인권문제 때문에 임박한 미소정상회담이 방해를 받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닉슨은 소련 유대인 때문에 자신과 키신저가 고안한 냉전의 대전략인 데탕트가 방해를 받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유대인이 방해를 해서는 안되고,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들의 조용한 외교 "quiet diplomacy"를 계속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만약 유대인들이 이 문제때문에 정상회담을 방해한다면, 닉슨은 주요 방송시간대에 대국민 연설을 통해 유대인의 충성심에 대한 공격할 것이라 경고했다.

관련 녹취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닉슨: 말하자면, 헨리 (키신저),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미국 역사에서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최악의 사건이 되지 않겠나? 

만약 그들이 정상회담을 방해한다면, 다른 이유들 때문이라도 이를 막아야 하고, 나는 그들을 비난할 것이고, 나는 저녁 9시 방송에서 8천만 국민들 앞에서 유대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것이야.

키신저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닉슨 :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반-유대주의자란 비난을 다소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회피하지 않을 거야. 그들은 미국의 이익 보다 유대인의 이익을 더 위에 두고 있고, 이제는 미국의 유대인들이 미국이 우선이고 유대인은 그 다음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때가 온거야.

이 대화가 있기 전날에 닉슨은 스파이로 애그뉴 부통령 Spiro Agnew 과의 대화 도중에, 유대인들이 소련내 유대인 이민 문제를 가지고, 미국 외교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몇몇 유대인들이 항의할 수도 있지만, 미국인들은 그들이 우리 외교정책을 파괴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말이야!"

다른 녹취록에 따르면 다음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키신저 :  국무부가 소련의 유대인 정책에 항의하는 치명타를 날렸다고 합니다.

닉슨 : 오, 왜지? 왜 우리가 그들을 말리지 않았던걸까? 제길, 애송이들 같으니라구.

키신저: 나는 각하께 서명을 부탁드렸습니다.

닉슨: 좋아, 문서에 서명하지.

키신저 : 앞으로 2달 동안, 소련에 관한 국무부의 어떤 성명도 비록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백악관의 허락을 받아야만 합니다.

닉슨: 헨리, 그것이 매우 중요해. 앞으로 내 허락 없이는, 소련에 대한 어떤 발언도 성명도 있어서는 안돼!

키신저 : 각하도 아시다시피, 저도 유대인입니다만, 소련 유대인에 대해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만약 소련이 미국내의 흑인 대우에 대해 비난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닉슨: 그렇지.

키신저: 네, 소련이 소련 인민을 어떻게 다루든지, 그것은 우리 관심사가 아닙니다.

결국, 닉슨과 키신저는 이스라엘의 개입요청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스라엘측의 요청은 소련이 자국내 유대인 이민을 허용하고, 소련계 유대인이 그곳에서 숙청당하는 것을 미국이 압력을 가해서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다음 대화 녹취록이 닉슨과 키신저 입장의 단호함을 보여준다.

<<키신저- 소련에서의 유대인 이주는 미국 외교정책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소련에서 유대인을 가스실에 집어넣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미국이 관심사가 아닙니다. 아마도 인류의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닉슨- 그래요. 우리가 그것 때문에 세상을 날려버릴수는 없지요.>>

소련내 유대인 인권 문제는 이후에도 미국외교의 주요 쟁점으로 남았다. 특히 카터 정권 하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도덕성이라는 주제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197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카터」는 공화당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인권을 도외시하고 권력정치 일변도였다고 공격했다. 「카터」는 9월8일 연설에서 『「포드」행정부 지도자들은 외교정책에는 도덕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국가 이익을 원칙보다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고 말했다. 「카터」는 자기 행정부는 『소련과 협상을 벌일 때는 소련의 정치범과「이스라엘」로 이민 가겠다는 소련내의 유대인들을 염두에 둘 것이고』, 인권을 탄압하는 우방들에는 『생존권자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그런 나라들을 상대로 미국이 가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유를 신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카터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키신저는 「도덕성」과「도덕의 주장」과는 구별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목적이 수단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정책은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키신저는 소련의 인권문제는 미국 외교정책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던 것이다. 

외교와 인권의 조화는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추구해야 할 이상임이 분명하지만, 상황에 따라 대두되기 마련인 현실주의의 압력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국가 인권위원회 위원장과 다른 지점이다. 대통령은 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인식을 초월해야만 한다. 위원장은 대통령에게 인권이라는 문제에 대한 조언을 하지만, 대통령은 인권문제를 전반적인 국제관계를 고려한 총체적 맥락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타국의 인권 문제와 자국의 외교정책을 통한 국익이 충돌할때, 대통령은 무엇이, 어떤 정책적 판단이 국익을 위해 최선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철학은 외교와 인권의 갈등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외교에서 인권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1) Stephen A. Garrett,"Nixonian Foreign Policy: A New Balance of Power, or a Revived Concert?" Polity 8, no. 3 (1976),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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