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고딘디엠에 대한 미국 정부내 갈등?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제네바 회담 이후 잠깐 베트남 정세가 안정을 보이면서, 남베트남의 고딘디엠이 "남베트남의 기적"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잠깐 동안이었을 뿐이며, 칭송받는 동안에도 일부 당국자들은 디엠의 흠집을 내는데 열중했다. (가령, 콜린스 미국 특사, 엘브릿지 더브로 Elbridge Durbrow 미국 대사가 그랬다.)

60년 12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결성을 즈음해서, 남베트남의 안보 불안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대책을 고심하게 되었다. 

문제는 위기의 본질에 대한 해석의 차이였다. 미국의 매파와 비둘기파는 갈등이 사이공 체제에 저항하는 내전 성격의 반란인가 아니면, 북부로부터의 침략인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에 단지 소수의 관찰자들만이 문제에는 2가지 차원이 존재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디엠 통치에 대한 남베트남 내부의 불만 그리고 그 불만을 하노이가 주도하는 국가 통일 기회로 이용하고자 하는 북베트남 지도부의 노력. 

뿐만아니라,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 차이 뿐만 아니라, 그렇다면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를 두고 미국 정부 내에 갈등이 존재했다. 

처음부터,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입장차이가 존재했다. 사이공의 미군 원조자문단 장교들과 워싱턴의 국방부 장교들은 문제의 핵심은 국가안보라고 믿었다. 만약 게릴라 세력을 패배시킨다면, 비록 디엠의 약점이 심각하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국무부의 민간 관리들과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은 문제가 고딘디엠 본인에게 있다고 믿었다. 만약 그렇다면, 디엠이 정치와 사회 개혁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이상, 군사적 해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 그들은 믿었다. 


출처-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 2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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