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덜레스,고딘디엠과 이승만에 대해서...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고딘디엠과 이승만>

1955년 베트남과 한국의 주요 동맹국 미국의 국무장관 덜레스의 고딘디엠과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이었는가? 


1955년 4월 30일, 고딘디엠 총리의 남베트남 정부군이 반정부 파벌세력을 무력으로 소통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디엠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다졌다.

디엠이 권력 기반을 다지자, 불과 며칠 전까지 디엠의 축출을 검토했던 미국 덜레스는 입장을 변경, 디엠과 더불어 한 배에 타기로 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여전히 고딘디엠을 불신했다. 디엠의 반-프랑스 감정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고딘디엠 문제는 5월 8일 파리에서 열린 미영불 3국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미국의 덜레스는 디엠이 문제가 있고,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남베트남에 디엠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랑스 총리 에드가 포르 Edgar Faure 가 디엠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미쳤다”고 주장했고, 프랑스는 더 이상 그와 위험을 감수할 의사가 없다고 발표했다. 만약 미국이 그를 계속 지원한다면,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떠날 것이라 경고했다. 1)  포르의 불만에 대해서 덜레스는 워싱턴은 프랑스의 잔류를 원한다고 답했다. 

이렇게 디엠 문제가 미국-프랑스 갈등의 쟁점이 되었다. 3국 회담 이후의 수 일 동안 양국 정부는 베트남 전략에 대한 근원적인 불일치 문제의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 총리 에드가 포르는 디엠 지지를 위한 몇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디엠이 개각을 통해 정부의 정치적 구성 범위를 확대하고, 반-프랑스 선동을 중지하며, 계획된 일정에 따른 프랑스군의 철수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미국 국무장관 덜레스는 디엠에게 각료 확대를 조언 하겠지만, 다만 디엠은 미국의 지시에 따를 만한 인물이 아님을 강조했다.    

프랑스 총리를 설득하기 위한 작업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덜레스는 다음 논리를 동원했다고 알렸다. 덜레스는 한국의 이승만 처럼, 고딘디엠을 혐오할만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의 모든 아시아 정부들을 통치한 것은 독재자들이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덜레스는 포르에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결국 포르는 여전히 디엠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디엠에게 기회를 주기로 하는데 동의했다. 2) 

1) George C. Herring, America’s Longest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50–1975, 2th ed. (New York: ALFRED.A.KNOPF,1986),p.54.

2)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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