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의 연구사 (1) Le monde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


영국 역사가 리처드 에반스는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의 연구사와 쟁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의 체임벌린 인식은 연구사에서 어느 시점에 고정되어 있는가?


연구사

- 1940년 7월에 <죄인 Guilty Men>을 "카토"라는 가명의 작가가 출간했다. 그들은 3명의 언론인이었다. 이 책은 맥도널드,볼드윈 그리고 체임벌린이 나치즘이라는 점증하는 위협에 맞서 나약했고, 우유부단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유화정책과 관련된 3명 모두를 적폐로 규정, 정부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책은 주장했다. 

체임벌린 죄인론은 전후에 출간된 처칠의 전쟁 회고록에 의해 강화되었다.  처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불쌍한 네빌..그는 역사에서 나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역사를 쓸 것이기 때문이다." 1) 

이른바 <죄인론>은 영국이 보다 이르게 재무장했다면, 전쟁을 막을수도 있었고, 영국 프랑스와 더불어 1936년의 라인란트 재무장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독재자에 대한 유화는 비도덕적이고, 어리석으며,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화정책에 대한 죄인론식 인식이 나중에 1956년의 수에즈 운하 위기라는 재난의 씨앗이 되었다.  죄인론이 냉전 논리와 결합된 것은 56년의 수에즈 참사였다.

- 죄인론의 전제는 세계 강대국이었던 영국이 독재 타도를 위해서 유럽 대륙에 개입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처음부터 히틀러가 유럽과 세계 정복에 나섰다는 점을 깨닭아야 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세계정복이라는 야욕을 가진 악마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테일러의 제2차세계대전의 기원은 히틀러의 세계정복 의도를 반박했다. A.J.P. Taylor in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오히려 테일러는 체임벌린의 개입주의가 전쟁을 유발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히틀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뒤따른, 길버트와 고트의 <유화론자>는 체임벌린과 영국 유화정책 찬성론자들이 전쟁을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명예로운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Gilbert and Gott, The Appeasers

1) Robert Self, Was Neville Chamberlain really a weak and terrible leader? - BBC News, 2018.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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