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네빌 체임벌린의 고립무원? Le monde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




네빌 체임벌린은 250년 이상 지속된 영국 외교정책의 전통을 이어갔을 뿐이다. 

영국 외교의 전통은 우선, 유럽대륙의 동맹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결정의 배후에는 대륙 국가들 사이의 세력 경쟁이 결국 세력 균형을 이루기 마련이며, 만약 균형이 파괴될 경우 영국이 개입하여, 균형을 보존하여, 유럽대륙에 영국 본토를 위협할 패권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따라서 영국이 대륙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이익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협이 존재해야 했다. 개입을 가장 확실히 만드는 도발이란 "런던의 심장을 겨냥한 칼"인 벨기에에 대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도발은 우선 중부,동부 유럽에 집중되었다.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 따라서 나치의 도발은 영국에 대한 직접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심지어 체임벌린이 대륙에 대한 군사개입을 원했다고 하더라도, 영국 외교의 전통에 따른, 개입에 대한 명확한 명분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최선의 대안은 협상이었다. 

독일의 부상에 대해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세력균형을 이룬다는 것도 당시에 기대할 수 없었다. 1937년, 프랑스와 소련이 동유럽 안보를 위해 협력한다는 것도 일장춘몽이 되었다. 

소련과의 협력으로 동쪽과 서쪽에서 독일을 압박한다는 프랑스의 구상이 실패하면서, 프랑스는 마지노선에서의 전략적 방어노선에 집착하게 되었다. 프랑스군은 마지노선 뒤에 숨어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였고, 국경을 넘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반공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체임벌린은 소련의 잔인한 독재자 스탈린과 손을 잡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한 체임벌린은 마지노선 뒤로 숨어버린 프랑스가 히틀러에 대한 공세를 원하치 않는 것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영국과 독일이 동유럽을 두고 싸워서 국력을 소모한 상황에서, 부르주아 국가들이 약해진 틈을 타서 스탈린의 소련이 동유럽을 침공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부지리각인가?) 

더욱 절망적인 것은 미국과의 동맹 가능성도 요원해 보였다.  1930년대 도안 미국 의회는 유럽 문제에 대한 개입을 방해하는 법안과 결의안들을 통과시켰다. 

이후의 전쟁에서 영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될 국가들이 전쟁을 주저하는 마당에 체임벌린은 협상이 최선이란 결론을 내린 것은 합리적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영국 단독으로 독일을 상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영국 군부가 반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참고-

HISTORY IN DISPUTE, Volume 4 • World War II, 1939-1943 ,St. James Press,2000, 17.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