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 대영제국의 영광과 그 그림자? Le monde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


19세기 말에, 영국은 군사적으로,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패권국가였다. 

영국 상품이 세계 시장을 지배했고, 영국 해군이 세계 방방곡곡에서 영국 상품을 실어나르는 바다를 순찰했다. 대영제국은 세계의 육지 면적의 1/4에 달했다. 

영광의 정점에 있었음에도, 대영제국의 군사적 약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영제국이 지나치게 넓었다는 것이 영광이자 동시에 약점이 되었다. 제국은 너무 광범위하게 산재되었고, 그 방어를 위해서 상당한 자원이 필요했다. 

영국 해군과 육군은 유럽에서, 카리브해, 중앙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 그리고 태평양에 이르는 지역을 방어해야만 했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제국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영국 육군은 소규모였고, 아시아 혹은 유럽에서 대규모 분쟁이 발발할 경우에 제국 곳곳으로부터 징발된 군대에 의존해야만 했다. 

바로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군동원 문제로 제국 내부에서 불만이 점점 고조되었다. 1914년에 영국 왕 조지5세가 전체 제국을 대표하여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내의 백인 국가들 (캐나다,호주,뉴질랜드,남아프리카)은 자신의 미래를 런던의 정부에게 맡긴다는 점에 대해서 점점 꺼리게 되었다. 

특히 2차 보어 전쟁 (1899년 - 1902년) 동안, 결국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의 심각한 약점이 부각되었다. 보어전쟁 동안, 제국 전역에서 이 전쟁을 위해서 군대와 자금을 제공해야만 했고, 전쟁 때문에 대영제국 내 민족주의자들이 성장, 그들은 영국으로부터의 자치 혹은 독립을 주장했다.


출처-

G. H. Bennett, Chapter Ten. British Foreign Policy, 1900–1939, A Companion to Early Twentieth-Century Britain. Blackwell Publishing, 2002. 152-153.  


-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영국 연방국가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그들은 히틀러와의 전쟁을 주장했을까? 

유럽의 히틀러라는 '불'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서 보면 어떻게 보였을까? 반딧불이??

체임벌린은 유화정책을 구상하면서, 영연방 국가들과 어떻게 논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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