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 이후 베트민이 공격을 중단한 이유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의 프랑스 기지가 베트민 군대에게 항복한 이후, 베트민 군대가 기세를 몰아서 하노이,하이퐁 그리고 홍강 삼각주를 위협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제네바에서의 협상과 별도로, 베트민은 무력으로 통킹을 장악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디엔비엔푸 이후 호치민이 소련에게 전쟁을 끝내는데 도움을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즉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베트민은 지친 상태였고, 그들은 전열의 정비를 위해서 평화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첩보에 따르면, 6월말- 7월초 동안 베트민 주력부대가 홍강 삼각주를 향했다. 그리고 프랑스 관리들은 미국측에, 상황이 파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만약 베트민이 홍강 부근에서 공세에 나섰다면, 프랑스가 하노이를 수호할 수 있을지 의심되었다.

그렇다면, 왜 베트민 전쟁 기획가들은 6월말로 예정된 총공세를 단행하지 않았는가? 65년 5월 레주언이 작성한 한 문서에 그 이유가 제시되었다. 그에 따르면, 베트민은 디엔비엔푸에서 완벽한 승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베트민은 프랑스의 약점을 증폭시킬 수 있는 전략 예비 전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베트민 부대가 6월말-7월초에 홍강 삼각주에 대한 대공세에 나선다는 프랑스 첩보는 과장된 것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베트민의 총공세를 자제시킨 것은 미국의 개입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뿐만아니라 베이징과 모스크바도 베트민의 자제를 촉구했다. 세계 공산주의의 양대 국가는 신임 프랑스 총리 망데스-프랑스의 평화 노력을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결국, 베트민은 제네바 회담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고, 홍강 삼각주에 대한 총공세는 없었다. 


출처-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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