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인도차이나에 대한 미국-영국-프랑스의 동상이몽?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2년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휴전 가능성이 대두되자, 미국-프랑스-영국 3국은 중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을 우려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52년 1월 워싱턴에서 미국-영국-프랑스 3국 군사대표단 회의가 열렸고, 중국의 인도차이나 분쟁 개입 위협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프랑스는 중국의 침공시, 미국이 공중과 해상 지원을 해주기를 원했다. 1)  하지만, 프랑스의 요청에 대해 미국은 확답을 회피했다.

핵심 쟁점은 중국의 인도차이나 침공 시에,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의 주장,즉 중국의 해안 봉쇄와 중국 본토에 대한 공습 대응을 반대했다는 것이었다. 영불은 미국의 반격이 중국의 공격이 발생한 국경 지역에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자신의 군대가 인도차이나 외부에서 중국과의 분쟁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영국도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화나게 만드는 일은 피하려 했다. 미국 대표는 런던의 관심사가 분쟁 확대의 경우, 중국이 홍콩을 공격하거나 경제 봉쇄에 나서는 것에 있다고 의심했다. 3국이 동의한 것은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회담은 중요한 합의 없이 결렬되었다. 3국의 입장 차이만이 확인되었다. 워싱턴은 전쟁을 중국 본토로 확대하는 것도 불사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확전을 두려워 했고, 분쟁을 동남아시아에 한정되게 만들기를 원했다. 2) 

인도차이나 전쟁의 확전 위험이 영국의 처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인도차이나 전쟁의 확전 가능성에 대해서 52년 3월의 각료회의에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미국인들이 전쟁 지역을 확장할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 적의 공격지점을 넘어서는 지역의 항구와 통신시설에 대한 폭격, 중국 하천에 대한 기뢰 부설 그리고 중국 해안에 대한 해상봉쇄를 할 수도 있다." 처칠에 따르면, 미국의 확전 정책이 전면전을 유발할 수도 있으며, 극동에서 영국에게 매우 중요한 홍콩과 말라야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아니라 처칠의 주장은 실용적이면서, 윤리적이었다. "미성숙한 중국인들을 상대로 폭탄을 낭비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며, 아무런 목적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3)

처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위협에 대한 강경대응은 미국의 공식 정책이 되었다. 52년 6월 25일의 미국 국가안보보장회의,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 관련 결의는 다음과 같았다. 만약 중국이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한다면, 미국은 인도차이나 방어를 위해서 해군과 공군을 파견할 것이며, 중공군에 대한 해상,항공 작전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할 것이다. 4)

1)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p.119.

2)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p.120.

3)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213. 

4) George C. Herring, America’s Longest War: The United States and Vietnam, 1950–1975, 2th ed. (New York: ALFRED.A.KNOPF,1986),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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