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 프랑스와 영국의 유화정책... Le monde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

처칠의 역설은,1914년 이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거의 일관되게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내렸던 一 그가 자부
했던,군사전략에 대한 판단들 포함해서 이 위대한 낭만주의자가 독일 문제라는 한가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현실적이었다는데 에 있었다.

역으로»유화정책을 추구한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의 상황판단一 1938-39년에 히틀러와의 협상을 통하여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어떠한 합리적인 관찰자에게도 명백하게 뇨였을 때조차 변경하지 않았던 一은 전적으로 비현실적이었다. 
이것이 1939년 3-9월의 블랙 희비극이 빚어진 이유였다. 그 희비극은 아무도(독일조차) 원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은 전 쟁이 일어나는 것으로 끝났으며,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는 1940년의 전격전으로 큰 타격을 받기 전까지는 교전국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영국과 프랑스의 유화정책 추구자들은 그들 자신이 인정한 증거 앞에서도 여전히 소련과의 동맹을 위한 진지한 협상을 벌일 수 없었는데,소련 없이는 전쟁을 연기할 수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없었고,  체임벌린이 갑자기 부주의하게 동유럽 여기저기에 대해 산발적으로 작성한 ——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소련에 문의하거나 충분히 알리지도 않은 채 一一 독일의 공격을 막아 준다는 보증서들 역시 소련 없이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런던과 파 리는 싸우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무력시위로 싸움을 막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는 히틀러에게나,그점에 관한 한 스탈린에게나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았다. 스탈린측 협상자들은 발트 해에 서의 전략적인 합동작전을 제안했으나 허사였다. 

독일 군대가 폴란 드로진격했을 때조차 여전히,히틀러의 계산대로 체임벌린의 정부 는 히틀러와 타협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Watt, 1989, p.215)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상) 20세기 역사,까치, 2009. 220-221.



덧글

  • ㅈㄷㄱㄱㅈ 2018/05/01 12:01 # 삭제 답글

    1대전으로 인한 기억은 너무나도 참혹해서 제정신을 가진 이들이라면 당연히 전쟁은 어떻게든 끝까지 피하고 싶어했으니까요.
    그런데 처칠은 예외였고요.
    역시 제정신이 아닌 히틀러가 없었다면 그저 주정뱅이 해군장관으로 기억되었겠죠.



  • 파리13구 2018/05/01 12:09 #

    처칠을 수렁에서 구한 것이 바로 히틀러입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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