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윈스턴 처칠?" Le monde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9일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비판하면서 “처칠의 혜안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 대표는 “히틀러의 위장평화정책에 놀아난 체임벌린보다 당시는 비난받던 처칠의 혜안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1938년 뮌헨회담으로 독일에 유화정책을 편 네빌 체임벌린 전 영국 수상(1869~1940)은 문재인 대통령에, 이를 비판한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은 홍 대표 자신에 비유한 것이다. 홍준표가 한국의 윈스턴 처칠을 자임하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강경책으로 일관하겠다고 주장한다.

홍대표가 처칠을 인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8월에도 홍준표 대표가 16일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고 한다.

그는 "2차 대전 직전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히틀러의 평화공세에 속아 대독 유화정책을 썼다. 반면 윈스턴 처칠은 대독 강경정책을 천명했다"며 "요즘 국제정세를 볼 때 대통령 인식은 2차 대전 중 체임벌린의 대독 유화정책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정부의 이런 안이한 인식에 적절치 대처해주기 바란다"고 당에 주문했다.

하지만, 홍대표가 혜안이 있다고 평가한 처칠은 모든 위협에 대해 강경책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1954년 베트남과 중국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 초래된 2번의 위기, 즉 디엔비엔푸와 대만 해협 위기에서 위대한 처칠은 유화정책을 선택했다.

공산군의 팽창에 대한 "대량보복"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젠하워의 미국은 54년의 두 번의 위기동안 전쟁도 불사할 기세였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서양의 핵심 동맹국 영국의 제지를 받았고, 미국의 개입은 좌절되었다.

1954년의 동아시아에서 영국 정책은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것 만큼이나, 미국을 자제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1) 전후 자원과 국력의 한계를 절감했던 영국은 전쟁 없이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길을 모색했다. 미국식으로 봉쇄를 전쟁으로 진행하다보면, 핵전쟁의 위험이 높았고, 특히 중국을 원수로 만들어 홍콩의 안전을 파괴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동남아 전략은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54년 9월 모택동의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제1차 타이완 해협 위기”를 도발하자, 이든은 장개석의 대만이 중국본토 연안의 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위기가 중국과의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였다.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처칠에게 다음과 같은 가시돋힌 말을 건냈다. "귀국 정부가 앞으로 2-3년 동안 공포로 떨동안, 미국 정부는 중국과 전쟁을 치르게 될 지도 모른다... 아마도 영국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귀하는 대만이 서태평양의 섬 방어선 구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대만의 우리 친구들을 배신하는데 따른 극동에서의 심리적 결과에 주목하야 하며, 그 결과로 공산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저항이 붕괴될 수도 있다." 아이젠하워에 따르면, "오늘날 대만, 진먼과 마쑤는 1931년에 만주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2)

말하자면, 아이젠하워는 처칠의 영국이 54년의 디엔비엔푸와 대만 해협에서 유화정책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에 대한 처칠은 반응은? 

"여보슈, 내가 윈스턴 처칠입니다."였다. 즉 윈스턴 처칠은 유화정책의 반대말이라는 것이었다. ㅠㅠ 

이렇게 중국과 관련된 디엔비엔푸와 대만 해협 위기에서 영미 동맹은 이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홍준표에게 38년과 54년의 처칠은 같은 처칠인가, 아니면 다른가?

이렇게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해서 혜안을 가진 윈스턴 처칠은 항상 강경책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홍준표가 정세의 미묘한 변화를 무시하고, 강경론만을 고집할 때 만날 수 있는 것은 56년의 앤서니 이든이 될 것이다.

홍준표는 1956년 영국의 앤서니 이든이 이집트 나세르에 대해 범한 실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1) James Waite, The End of the First Indochina War: A Global History, Routledge, New York, 2012.p.205.

2) James Waite, The End of the First Indochina War: A Global History, Routledge, New York, 2012.pp.210-211.   





덧글

  • K I T V S 2018/04/30 14:56 # 답글

    병신 취급받고 있는데 이런 포스팅은 현재로선...ㅠㅠ
  • 파리13구 2018/04/30 14:57 #

    누가요?
  • K I T V S 2018/04/30 15:20 #

    준표가요...
  • 파리13구 2018/04/30 15:21 #

    넵..
  • 2018/04/30 15: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4/30 15: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炎帝 2018/04/30 15:27 # 답글

    홍준표도 시가랑 톰슨기관총 들려주면 잘 어울릴거 같긴 하네요.
  • 동양의 인스머스 한국 2018/04/30 16:11 # 답글

    얼마나 한국의 상황이 Being Seen 같으면 모리배 마왕 준표가 처칠로 비유될수가!
  • 제트 리 2018/04/30 17:22 # 답글

    ㅋㅋㅋㅋ 개인적으론 홍씨는 치질 환자 같습니다
  • 파파라치 2018/04/30 17:45 # 답글

    1. 상대가 북한인 만큼, 홍준표의 의견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귀기울여 들을만 합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조차 귀기울이게 만드는 것이 정치인의 능력이긴 하지만요.

    2. 54년도의 처칠이 대만 정책에 있어 유화정책을 주장한 건 그의 탁월한 균형감각 때문이라기보다 미국의 아시아 개입 확대에 따른 유럽 주둔 전력 약화를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8/04/30 17:46 #

    2. 38년에 체임벌린이 유화정책을 주장한 것은 영국의 극동정책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 파파라치 2018/04/30 17:52 #

    38년의 체임벌린이 뮌헨으로 향할 때 어떤 고민거리를 갖고 있었는지는 잘 알고 계실 것이므로 제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체임벌린이 소망했던 것처럼 유럽의 세력균형과 극동(그리고 인도)에서의 영국 이익의 방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히틀러를 상대로는 달성 불가능한 과업이었겠지요.
  • 파리13구 2018/04/30 17:59 #

    2. 제 질문은요,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 유럽정책이냐 아니면 세계정책이냐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홍준표가 처칠을 영웅으로, 체임벌린을 바보로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것입니다.

    체임벌린의 정책은 극동에서의 일본의 부상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 파파라치 님이라면, 38년의 영국의 국력으로, 유럽의 히틀러와 극동의 일본을 동시에 적으로 만들어 싸우는 것이 합리적이라 보십니까?

    38년의 처칠이 무조건 옳고, 체임벌린은 바보라는 인식에 동의하십니까?
  • 파파라치 2018/04/30 18:31 #

    보통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건 아시죠?

    홍준표의 발언은 역사가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발언입니다.

    대중이 체임벌린이 놓인 상황을 상세히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만큼, 실제로 체임벌린이 바보였는지 아니었는지는 홍준표의 문맥 속에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답변은 아니다 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질문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이미 결과를 알고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우리는 38년의 체임벌린은 극동에서의 영국 세력권을 포기하더라도 히틀러와 맞서 싸웠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겠죠.
  • 파리13구 2018/04/30 19:13 #

    홍준표에게 이상적인 국민은 역사적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개돼지입니까? ^^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치가는 뭐든 해도 된다는 것은 어떤 정치철학적 배경을 가진 겁니까? ㅎ
  • K I T V S 2018/04/30 19:27 #

    대신 체코는 총 한번 쏘지도 못하고 독일에게 멸망했잖아요...ㅠㅠ
    2차대전 후에도 빨갱빨갱 먹고 가난해져버렸고... 덜 죽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였을 뿐...
  • asdf 2018/04/30 19:29 # 삭제

    체코 X망의 지분은 따지고 보면 폴란드와 프랑스의 책임이 더 큰데요
  • 파리13구 2018/04/30 19:32 #

    K I T V S 님

    전간기 프랑스 안보정책에서 마지노선과 동유럽 소동맹의 모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asdf 2018/04/30 19:36 # 삭제

    자꾸 체코 X망을 체임벌린에게 묻는데 체코 X망의 원인은 폴란드와 프랑스인데

    프랑스는 1차대전 떄 경험으로 자기들 피 안 흘릴려고 했고 폴란드는 지들도 땅욕심 내서 독일 편 들어서 슬로바키아 영토 뜯어가는 상황

    전통적으로 육군은 동맹국에 의존하는 영국이 이 상황에서 강공책 필 여지가 있긴 합니까?? 저때 당시 영국은 독일군 전력도 제대로 모르던 상황이에요??
  • K I T V S 2018/04/30 19:42 #

    뭐, 따지자면 폴란드와 헝가리도 체코 죽이려고 독일이랑 동맹인척하는 행동도 했었고 프랑스와 영국은 참호전 악몽 때문에 체코가 도와달라는데도 쌩까고 확 줘버린 거 모두 공동책임이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모든 유럽 국가들이 사실 상 몰락해버렸으니까(프랑스는 멸망했다 부활했지만 말 그대로 쩌리가 됐고 영국도 식민지 다 풀어주고 영연방형태로만 남고 완전 미국한테 힘 다 뺏긴거면 몰락이나 다를 바 없고) 아쉬움이 남는 수밖에 없는거죠.
  • K I T V S 2018/04/30 19:43 #

    주인장님 / 전 그저 마지노선만 보면 하늘이 프랑스를 버렸다고 밖에 생각 안합니다.
  • 파리13구 2018/04/30 19:46 #

    K I T V S 님

    프랑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입니다.

    프랑스를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ㅠㅠ
  • 파파라치 2018/04/30 20:42 #

    파리 13구/

    정치가기 할일은 역사적 사실이 오늘의 특정 이슈에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밝히는 것이지 사실 하나를 일일이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체임벌린은 바보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바보짓을 했으니 크게 틀린것도 아니죠. 여기서 국민 개돼지가 왜 나옵니까? 그냥 기분 나쁘다고 솔직히 말씀하시죠?

    별로 토론할 기분이 아니신것 같으니 여기서 접도록 하지요.
  • 파리13구 2018/04/30 20:19 #

    파파라치 님/

    대중이 체임벌린이 놓인 상황을 상세히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이게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는 것 아닙니까? ^^
  • 파리13구 2018/04/30 20:31 #

    파파라치 님/

    답글을 마음대로 수정하는 것은 어디서 배운 토론 태도 입니까? ^^
  • 파파라치 2018/04/30 20:52 #

    파리13구/

    38년의 체임벌린이 순진하게 히틀러를 믿은 바보가 아니라 영국의 빈약한 공군력, 극동에서의 세력균형, 이제막 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개돼지였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답글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수정한 것을 “어디서 배운 토론태도”라고 표현하는 님의 태도야말로 어디서 배운 건지 궁금하군요.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 파리13구 2018/04/30 21:00 #

    파파라치 님/

    답글도 마음대로 수정하고, 내용을 바꾸고, 이제는 논지도 왜곡합니까?

    다시 반복할까요?

    대중이 체임벌린이 놓인 상황을 상세히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이게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는 것 아닙니까? ^^
  • 파파라치 2018/04/30 21:39 #

    논지는 님이 왜곡하고 있는것 같은데요?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요. 태반은 체임벌린이 누군지도 모를테니. 님과 제 차이는 그런 역사적 사실 몇 가지에 대한 지식의 유무가 인간과 개돼지의 차이라는 종의 차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지 여부인것 같네요.

    저는 파리13구님이 관리회계와 재무회계의 차이를 알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님을 개돼지 취급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님의 생각은 다르신가 보네요.
  • 파리13구 2018/04/30 22:13 #

    파파라치 님/

    정치가가 이렇게 사실 관계에 대한 깊은 검토 없이 자기 입맛대로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됩니까?

    시민은 정치인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의 동의와 표현의 자유를 정치인에게 부여해야 합니까?

    38년에 네빌 체임벌린이 직면한 대영제국의 안보 문제를 공부해 보면, 유화도 선택 가능한 정책 대안의 하나가 됩니다. 물론 참담하게 실패했지만 말입니다.

    홍준표가 이른바 "체임벌린 팔이?" 를 하면서, 김정은을 히틀러로,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으로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의 선택의 여지를 줄인다는 점에서 문제라 봅니다.

    또한 유화정책의 아버지 처칠 조차도, 모든 적에 대해서 적대정책을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54년 호치민과 모택동에 대해서는 유화를 주장한 바 있습니다.

    만약 처칠이 2018년 4월 30일의 한국 정치인이었다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모릅니다. ㅠ 38년의 처칠이 되었을 지도, 54년의 처칠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홍준표의 발언은 처칠하면 강경이고, 유화정책은 무조건 틀렸다는 전제를 가진 주장입니다.

    물론, 문재인의 대북정책이 참담한 실패로 끝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냉전의 역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54년 모스크바와 베이징하면 혁명과 세계 공산화에 혈안이 된 세력인데, 스탈린 사후에 내부 사정으로 인해서 서양과의 평화공존을 추구했습니다.

    적들의 평화공세에 대해서, 미국과 영국의 대응은 달랐습니다. 미국은 위장평화에 속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반면, 영국은 전술적 유연성을 주장하면서, 극동에서의 사활적 이익을 챙기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2018년 벽두에 시작된 김정은의 평화공세의 본질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54년 미국의 아이젠하워와 덜레스가 범한 오류를 반복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평화공세에 한국 정부가 전술적인 유연성을 발휘하면, 모종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홍준표의 주장은 54년의 아이젠하워의 실수를 반복한 것으로 봅니다. 적의 평화공세를 위장평화로 강경대응한 결과가 베트남 전쟁이라는 미국 현대사 최고의 비극이라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홍준표의 체임벌린,처칠 팔이를 비판하는 바입니다.

    네, 국민이 체임벌린을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체임벌린 시체팔이를 해서 한국 정부의 정책 유연성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정치 선동을 비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시민교육과 민주주의의 장래에 해가 된다고 봅니다.

    홍준표만 처칠팔이를 안 하면, 몰라도 되요, 하지만, 자꾸 자기에게 유리한 식으로 팔아먹으니까, 유화정책의 역사는 시민 교양교육의 과제가 되는 겁니다.
  • 파파라치 2018/04/30 23:00 #

    님의 결론에 동의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이렇게 불쾌할 일도 없었겠죠 그런 의도임을 짐작 못했던 것도 아니고) 제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시민에게 역사에 대한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다각도에 걸쳐서 검토해야 함을 교육하는 것이 정치인이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나 우선해야 하는 책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역사가의 책무겠죠. 정치가, 적어도 대중 앞에 선 정치가가 우선해야 할 책무는 본인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대중에게 적절한 언어로 호소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대중의 역사 교양을 뛰어넘는 수준의 사실에 대해 일일이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모 진보 정당의 인사가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산을 비판할 때 이승만이 고려했을 수많은 요소들(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국내의 무력 소요와 결국은 실현된 북한의 남침 위협 아래서 필수적인 손발이 되어줄 수 있는 공안 라인의 친일 인사들을 제거했을 경우에 예상되는 안보적 혼란과 그것이 초래할 결과)을 일일이 나열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 - 건국 과정의 정통성 확보와 정의의 실현 - 를 위해 친일 청산이 왜 필요했고, 거기에 반민 특위 해산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하면 됩니다. 대중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의 입을 통해서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이면을 들을 수 있고 판단은 그들의 몫입니다. 물론 정치인이 아닌 역사가가 그런 단편적인 사실에만 입각해 주장을 펼친다면 - 불행히도 진영 논리에 물든 한국에는 흔한 사례입니다만 - 비판받아 마땅하겠지만, 정치가는 적어도 모든 장소에서 거기까지 나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홍준표가 뮌헨이나 금문도, 쿠바 위기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고 유화책과 강경책이 필요한 시기가 언제인지 잘 알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나이브한 평화의 수사에 매몰된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에서 - 물론 그것도 정치적 프로파간다일 수 있고 저는 정치인 자신이 그것이 프로파간다임을 잘 알고 있는 한 그것이 꼭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파리13구님은 그것이 우민정책(i.e., 국민은 개돼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오히려 대중이 그정도 프로파간다를 간파할 능력을 갖출 수 있고 또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 지금까지 여러번 합의를 파기한 북한이 던지는 평화의 메시지를 쉽사리 믿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던지는 반대의 목소리는 홍준표의 역사 인식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당연히 나올 만하고 또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저는 파리13구님이 가지는 홍준표의 지성에 대한 불신만큼이나 이 정권의 정직성과 현실 인식의 나이브함을 불신합니다. 만약 이 정권이 북한의 약속이 아니라 행동, 그것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행동에 더 의미를 둔다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김정은을 찬양하든 천안함 희생자의 원한을 묵살하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사로 표현된 이 정권의 단순성은 홍준표의 그것이 비해 별로 나은 수준이 아니며, 파리13구님이 발끈한 까닭은 홍준표가 문재인보다 더 단순한 소리 - 혹은 사고 - 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필이면 님의 전굥인 외교사 영역에서 틀린 - 사실은 틀렸다기보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 말을 했기 때문인데, 그게 대중 앞에 선 정치인의 언어임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오도하는 언어는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시민 교양교육을 하는 것은 파리13구님같은 외교사 전공자에게는 최우선의 책무이겠지만, 정치인에게는 적어도 최우선의 책무는 아니다 - 이렇게 제 의견을 요약할 수 있겠네요.
  • 파리13구 2018/04/30 23:02 #

    네. 그렇게 정리하도록 합시다! ^^
  • asdf 2018/04/30 19:27 # 삭제 답글

    체임벌린이 까이는 건 처칠이 자기가 노르웨이 전역 말아먹은 걸 체임벌린에게 뒤집어 씌운 게 절반 이상이라 봐도...

    영국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 존버한 게 체임벌린의 유산이라....
  • 파리13구 2018/04/30 19:38 #

    프랑스 달라디에는요? ㅎ
  • asdf 2018/04/30 19:42 # 삭제

    그 양반은 그래도 파리 잃었어도 싸워볼려 했잖아요

    그리고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 군 수뇌부 삽질부터가....
  • Mediocris 2018/04/30 21:19 # 답글

    홍준표는 체임벌린의 판단실수의 대응논리로 처칠을 언급했는데 댁은 처칠의 유화정책을 근거로 체임벌린의 판단실수(유화정책)에 해당하는 문재인의 대북 유화정책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려는 논점일탈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처칠과 문재인의 유화정책은 시간, 공간,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댁이 논점 일탈을 피하려면 문재인의 대북 유화정책이 체임벌린의 판단실수(유화정책)와 같지 않다는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만, 아마도 지금 근거를 제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북회담의 결과를 지켜보아야 하고 그 뒤에도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2000년 6월 15일과 2007년 10월 4일의 평화선언에도 불구하고 핵개발과 전쟁도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은 2007년 10월 4일 선언과 순서만 조금 다를 뿐 내용은 똑같습니다. 2016년 7월 6일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에 의하면 북한 비핵화 아닌 ‘한반도 비핵화’는 미군철수를 의미합니다. 무슨 자신감으로 홍준표의 논리를 왜곡하면서까지 문재인의 유화정책을 옹호하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 asdf 2018/04/30 22:30 # 삭제

    처칠과 체임벌린의 상화잉 다른 만큼 문재인과 체임벌린의 상황도 다르겠죠

    최소한 체임벌린은 체코가 땅을 잃지 영국이 땅을 잃지도 않을 뿐더러 당시 유럽 최강 해군국인 섬나라 아닙니까??

    게다가 체임벌린은 동맹국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위치였다면 문재인은 자국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위치죠
  • 파리13구 2018/04/30 23:16 #

    님아, 38년 네빌 체임벌린의 극동정책에 대한 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세계무대에서의 대영제국의 힘의 한계는 언제부터 드러나게 되었을까요? 20세기초에 왜 영국은 영일동맹을 체결했습니까?

    스탈린 사후 54년의 아이젠하워의 공산권 정책의 한계에 대한 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디엔비엔푸 위기에서 왜 처칠은 아이젠하워에게 자제를 권고했을까요?

    45년 제네바 회담에서 공산권 정책을 두고 미국과 영국은 왜 충돌했습니까?

    왜 처칠은 54년 대만 해협 위기에서 동맹국 미국을 버리고, 평화공존을 주장했습니까?

    처칠이 지금 한국에 있다면, 강경론을 주장했을까요? 아니면 유화를 주장했을까요?

    56년에 앤스니 이든이 범한 실책에 대한 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Mediocris 2018/04/30 23:25 #

    블로그 관리자이자 주인장이라면 상대의 논지가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관리자이자 주인장의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댁의 세계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홍준표가 체임벌린의 판단실수의 대응논리로 처칠을 언급했다면 처칠이 체임벌린의 유화정책(판단실수)을 비난했다는 의미입니다. 논증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상대방의 기본 논지를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홍준표가 처칠을 빌어 체임벌린에 해당하는 문재인을 비난한 논리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댁은 엉뚱하게 쳐칠의 유화정책을 끌어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문재인의 유화정책을 비난하는 홍준표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논점일탈의 오류라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아직 문재인 유화정책은 체임벌린이난 처칠의 유화정책처럼 ‘결과가 도출’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댁의 질문에는 전혀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아시겠어요?
  • 파리13구 2018/04/30 23:31 #

    자, 논지를 따라가 보죠.

    체임벌린의 판단실수는 뭐라고 보십니까?

    1938년 세계에서 자유세계와 대영제국의 운명을 책임진 체임벌린이 직면한 위협은 무엇이었나요?

    당시 영국의 국방 상황은 어떠했고, 그 상황에 따라, 영국이 위기를 대처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보십니까?

    전간기 영국의 전통적 외교노선은 네빌 체임벌린의 외교정책과 우사했습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었습니까?

    왜 체임벌린은 38년에 유화라는 비극적 선택을 했을까요?

    네빌 체임벌린을 바보라 보신다면,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님의 입장이 나오면, 홍준표의 역사 주장의 타탕성에 대한 토론으로 나갈 수 있다고 보는데요?
  • 파리13구 2018/05/01 00:28 #

    님아, 저의 질문에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댁의 자유입니다.

    다만, 님이 주장한,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에 따르자면,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한 최근의 연구성과를 홍준표의 정치적 주장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글의 논지를 "자비롭게" 인정할 용의는 있습니까?

    물론 홍씨가 39년의 언저리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면, 인정합니다만,

    역사가들의 치열한 연구 끝에,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관용이 점점 자리를 잡는 요즈음에

    시대착오적인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한 해석을 들고 나온 것은 무리다 정도의 주장도 인정할 수 없나요?

    이것은 무슨 논리의 오류인가요? ^^
  • nayuta 2018/05/02 16:57 # 답글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면 우리나라는 관두고 미국이나 영국도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한 최근의 연구성과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진거 같지 않은데요
  • 파리13구 2018/05/02 17:00 #

    대중 영화가 역사적 사실 보다는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봅니다.

    처칠은 영웅이고, 체임벌린은 역적인 구도가 익숙하고, 팔아먹기도 좋습니다. ㅠ
  • deokbusin 2018/05/04 07:47 # 삭제 답글

    덧글들을 읽다가 1938년 영국 극동정책이 나와서 잠깐 제가 아는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1930년대 영국의 주요 극동-아시아 식민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상해 조계, 홍콩, 말레이와 싱가포르, 인도제국. 그리고 이들은 당시 기준으로 비용보다 수익이 더 많은 알짜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군사 방어 측면으로 볼 때는 상해가 가장 약하고 홍콩이 그 다음으로 약했고, 인도가 가장 강했지요.

    이 때문에 1938년 시점에서 영국은 상해는 사실상 방치하고, 홍콩은 일본과 전쟁시 넉 달 가량의 식량만 비축하는 정도로 방어에 대한 희망을 버렸습니다. 게다가 전간기 영국 해군은 서태평양에서의 해상위력 시위를 미국 해군에게 이양하다시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만주사변은 차치하더라도 1937년부터 본격화된 중일전쟁은 극동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내던 상해 조계를 실질적으로 마비시킵니다. 일본해군의 장강봉쇄로 인해 중국에서 가장 경제력이 높은 장강유역으로의 교통이 차단됨과 동시에 내륙과의 통상마저 심각한 제한을 받음으로써 중공업 생산재의 중국 수출은 물론 소비재 수출마저 큰 타격을 받은 겁니다. 그러니 극동의 두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관심도 줄어들 요인이 생긴 판에 히틀러가 주데텐 문제까지 일으키면서 극동과 중국에 대한 영국의 의지는 더욱 움츠러 들게 됩니다. 심지어 1940~41년에 이르면 버마-운남 통로까지 폐쇄할 정도로 영국은 일본 눈치를 봅니다. 만약 일본을 가장 심하게 견제하던 미국이 이 시기에 대독 전쟁까지 했다면, 영국은 더욱 움츠러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1938년 영국입장에서 극동은 일부러 전쟁할 정도의 가치는 없는 지역이었으므로, 외교적으로도 상해, 홍콩을 포함한 중국 방면은 립서비스 이상의 행동을 할 지역도 아니었을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체임벌린의 1938년 타협에서 극동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을 겁니다.
  • 파리13구 2018/05/04 07:49 #

    의견 감사합니다. ^^
  • 파리13구 2018/05/04 07:54 #

    deokbusin 님/

    체임벌린의 극동정책을 더 알기 위해서

    읽어볼만한 자료 좀 추천 바랍니다.
  • 파리13구 2018/05/04 08:03 #

    이글루스 deokbusin님 맞습니까?
  • deokbusin 2018/05/04 09:06 # 삭제

    그 deokbusin이 맞고요, 중일전쟁중 영국의 극동정책에 관한 자료들은 저도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단지 홍콩의 방어 태세는 네이버에 자리잡은 블로그인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에서 가져 왔고, 그 외는 단편적인기초지식으로 제가 추론한 것입니다.
  • 파리13구 2018/05/04 09:08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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