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베트남과 다른 동남아의 차이는?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전자에는 호치민이 있었고, 후자는 그가 없다는 것이 차이였는가?


미국의 베트남 정책 역사에서 같은 민주당 정부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해리 트루먼의 정책은 차이를 보였다. 전자가 냉전이 본격화하기 전의 정책이었다면, 후자는 냉전이 도래하고, 봉쇄정책이 미국의 대전략이된 시기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유럽 식민지 강대국의 식민주의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했다면, 후자는 정부 정책에서 반공주의가 강조된 것이었다. 트루먼 시대의 워싱턴이 동남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영향력 팽창에 대해 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책은 전통적인 반식민주의와 완전히 결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새로운 상황이 동남아시아에서의 독립 민족국가의 출현을 재촉한 요인이 존재했다. 트루먼 정부는 식민 통치의 유산이 지역 질서의 안정의 주요 저해 요인이었다고 인식,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에게 각각 버마와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토착 민족주의 운동 세력과 타협하라고 강요했고, 이는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도차이나의 상황은 달랐다. 이곳에서 유일한 효율적인 반식민주의 운동세력은 이미 공산주의자들의 통제하에 있었고, 다른 대안 세력은 미미했다. 따라서 워싱턴은 프랑스에게 민족주의 세력과 화해하라고 압박하는데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반식민주의를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베트민을 지원할 수 없었고, 이 경우 파리는 격분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미국의 베트남 정책은 반식민주의와 반공주의 사이를 방황하면서 표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국무부의 유럽파와 아시아파가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고, 결국 트루먼 정부는 마지못해 프랑스 편을 들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전통적인 반식민주의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참고-

William J. Duiker,  U.S. Containment Policy and the Conflict in Indochina.  Stanford University,1994. p.48



덧글

  • 무지개빛 미카 2018/04/26 20:55 # 답글

    문제는 호치민은 그래도 친미하고 싶었는데 미국이 그걸 걷어차고 프랑스의 뒤를 이어버린 것이죠. 미국은 프랑스를 따라가는게 아니었습니다.
  • 파리13구 2018/04/26 20:57 #

    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를 배신하면, 유럽에서 프랑스가 소련 쪽으로 붙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 제트 리 2018/04/26 21:49 # 답글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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