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아이젠하워,"영국이 동맹인 것 실화냐?"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4년에 중국과 미국은 2차례의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한번은 디엔비엔푸에서 다른 한번은 대만해협에서 양국은 충돌했고, 이는 잘못했으면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공산군의 팽창에 대한 "대량보복"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젠하워의 미국은 54년의 두 번의 위기동안 전쟁도 불사할 기세였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서양의 핵심 동맹국 영국의 제지를 받았고, 미국의 개입은 좌절되었다.

1954년의 동아시아에서 영국 정책은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것 만큼이나, 미국을 자제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1) 전후 자원과 국력의 한계를 절감했던 영국은 전쟁 없이 공산주의를 봉쇄하는 길을 모색했다. 미국식으로 봉쇄를 전쟁으로 진행하다보면, 핵전쟁의 위험이 높았고, 특히 중국을 원수로 만들어 홍콩의 안전을 파괴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동남아 전략은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54년 9월 모택동의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제1차 타이완 해협 위기”를 도발하자, 이든은 장개석의 대만이 중국본토 연안의 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위기가 중국과의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였다.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처칠에게 다음과 같은 가시돋힌 말을 건냈다. "귀국 정부가 앞으로 2-3년 동안 공포로 떨동안, 미국 정부는 중국과 전쟁을 치르게 될 지도 모른다... 아마도 영국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귀하는 대만이 서태평양의 섬 방어선 구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대만의 우리 친구들을 배신하는데 따른 극동에서의 심리적 결과에 주목하야 하며, 그 결과로 공산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저항이 붕괴될 수도 있다." 아이젠하워에 따르면, "오늘날 대만, 진먼과 마쑤는 1931년에 만주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2)

말하자면, 아이젠하워는 처칠의 영국이 54년의 디엔비엔푸와 대만 해협에서 유화정책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에 대한 처칠은 반응은? 

"여보슈, 내가 윈스턴 처칠입니다."였다. 즉 윈스턴 처칠은 유화정책의 반대말이라는 것이었다. ㅠㅠ 

이렇게 중국과 관련된 디엔비엔푸와 대만 해협 위기에서 영미 동맹은 이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 James Waite, The End of the First Indochina War: A Global History, Routledge, New York, 2012.p.205.

2) James Waite, The End of the First Indochina War: A Global History, Routledge, New York, 2012.pp.210-211.   



덧글

  • 까마귀옹 2018/04/20 16:59 # 답글

    문제는 역시 홍콩이었겠군요.
  • 파리13구 2018/04/20 17:01 #

    네, 영국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급했습니다.
  • wolf 2018/04/22 00:56 # 삭제 답글

    저 시기면 영국으로서도 식민지를 고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시절인데 홍콩에 대한 집착을 유지하는 게 묘하네요
    이미 인도까지 독립시켜버린 마당에
  • 라라 2018/04/22 01:25 # 답글

    영국이 제지한다고 미국이 자제를 해요?

    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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