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동남아의 봉쇄정책은 두 가지였는가?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장 쇼벨 - 
스위스 베른 주재 프랑스 대사이자, 제네바 회담에서의 프랑스 주요 협상가>

53년에 한국전쟁이 휴전을 하고, 영국과 미국은 중국이 팽창의 방향을 인도차이나로 정하지 않을까 근심했다.

중국 공산주의의 팽창에 맞서서, 동남 아시아에서 영국과 미국 양국은 봉쇄정책을 총론으로 공유했지만, 각론에서 차이를 보였다. 영국이 모택동의 중국과의 긴장완화를 도모했다면, 미국은 전쟁도 불사하려 했다. 이러한 미영 양국의 관점 차이에는 각각 홍콩과 일본에 대한 근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영국이 홍콩을 지키기 위해서 중국과 타협하려 했다면, 미국은 일본을 동맹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중국과의 대립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영국은 전쟁 없이 중국을 봉쇄하는 방안을, 미국은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더라도 중국을 봉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영미 양국의 동남아시아에서의 봉쇄정책의 모순이 드러난 것이 바로 1954년 제네바회담 이었다.

제네바 회담 중에서 프랑스는 의원내각제 체제의 고질병을 그대로 노출했다. 회담 도중에 정권이 교체된 것이다. 분단에 반대하고, 베트민에 대한 강경론을 주장한 라니엘,조르주 비도가 물러나고, 보다 타협적인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가 총리겸 외무장관이 되었다. 

54년 6월 24일에, 스위스 주재 프랑스 대사이자, 제네바 회담에서 프랑스를 대표했던 장 쇼벨이 신임 총리에게 회담 상황을 보고하면서 다음을 강조했다. 면담에서 쇼벨은 협상을 계속해서 관철시키여 하고, 분단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쇼벨, “미국은 반공주의 십자군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미국은 미국의 반공주의 투쟁을 위해서 하이퐁을 기지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장래에 공산주의를 인도차이나로부터 몰아내거나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반격(롤백)하는 것을 구상하는 것 같다고 쇼벨이 분석했다. 반면에 영국은 중국과의 아시아에서의 관계 정상화를 원하며, 만약 냉전의 양대 진영이 베트남의 중립을 보장한다면, 베트민이 지배하는 북베트남을 인정할 것이라 쇼벨이 보고했다. 이렇게 제네바 회담에서의 프랑스 협상가인 장 쇼벨(스위스 주재 프랑스 대사)은 동남아시아 봉쇄정책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입장 차이에 주목했다. 


참고-

James Waite, The End of the First Indochina War: A Global History, Routledge, New York, 2012.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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