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영국이 디엔비엔푸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 미분류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가 한창일 동안, 파리의 영국대사 젭 Jebb 은 베트남에 대한 영국의 군사 개입 요구를 다음에 비유했다. "이는 지난 1940년, 독일에 패배한 프랑스가 우리의 마지막 영군공군 비행대대까지도 요구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영국은 디엔비엔푸에서 진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프랑스 외무장관 조르주 비도는 앤서니 이든에게 다음을 확인했다. "디엔비엔푸가 함락된다고 왜 상황이 막장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군사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이젠하워와 덜레스가 런던에게 서양세력의 연합으로 인도차이나에 공동 개입하자고 주장하자, 영국 지도자들은 발을 뺐다.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은 프랑스를 위한 서양의 개입은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며, 런던의 어느 누구도 인도차이나 개입이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윈스턴 처칠 총리도 미국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많은 역경을 경험했다." "나는 싱가폴,홍콩,토브루크에서 쓴 맛을 보았다. 이제 프랑스가 디엔비엔푸에서 그럴 차례다."  

영국 전략가들은 디엔비엔푸가 함락되면 치명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프랑스군 최고 사령부의 극단적인 전망에 동의하지 않았다. 


참고-

James Waite, The End of the First Indochina War: A Global History, Routledge, New York, 2012. 47.


- 내가 처칠이었다면 비도에게 이렇게 위로했을 것이다.


"프랑스는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는 않았습니다 !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이 냉전은 세계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만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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