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스탈린 사망 직전 세계의 혼미?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하던 당시의 세계는 혼동 그 자체였다. 

열전이 되어 아시아로 확대된 냉전의 전쟁은 한국과 인도차이나에서 계속되었다. 영국령 말라야가 지글지글 끓어올랐고, 소수의 영국군이 비상상태에서 반도를 통제하기 위해서 안긴힘을 썼다. 필리핀 병사들과 그들의 미국 고문단은 공산반군인 후크발라합 반란 Hukbalahap Rebellion 세력과 싸우는 중이었다. 

[후크발라합 반란은 후크발라합 군인들이 필리핀 정부에 대항해서 일으킨 반란이다. 이 조직은 원래 1942년 일본군의 필리핀 점령에 저항하기 위해 항일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재임시까지 계속되다가, 1954년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에 의해 끝을 맺는다.]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군대가 대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약점을 탐색 중이었다. 

유럽에서 베를린은 여전히 화약고였다. 나토는 그들의 새 이웃인 서독의 무장 문제를 두고 갈등했다. 서독의 무장 문제가 프랑스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동독에서, 소련인들은 자신의 대리 정부가 대규모 반란을 유혈진압하도록 도왔다. 

이렇게, 스탈린 사망 이후, 1953년 여름이 되면 한국에서 취약한 휴전이 시작되었지만, 세계는 여전히 그 어느 때 보다 위험해 보였다. 수소폭탄 등장에 따른 열핵전쟁 thermonuclear war 의 위험이 새로운 전략 딜레마를 제기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단지 새로운 시대의 정상회담과 영국의 중재 영향력만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 뿐이라 믿었다. 새로운 냉전의 위험은 당시 79세의 처칠이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총리직에 머물러야 한다고 확신하게 만들었다. 

처칠이 고심할 동안,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했고, 상대적으로 젊은 62세의 아이젠하워가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었다.


출처-

James Waite, The End of the First Indochina War: A Global History, Routledge, New York, 2012.15. 


-스탈린이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냉전의 봄이 도래왔다. 이것은 냉전의 첫번째 데탕트였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