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영국,"프랑스냐,아시아 민족주의냐?"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1947년 영국의 인도차이나 전쟁 정책의 딜레마?

프랑스냐, 아시아 민족주의냐, 그것이 문제로다! 

1947년 영국 정부의 인도차이나 전쟁 정책은 극동의 같은 제국주의 세력인 프랑스를 도와야 한다는 당위와 아시아 민족주의 여론 눈치보기 사이의 대화였다. 

영국은 인도차이나 전쟁에서의 프랑스의 승리를 원했다. 극동에서의 프랑스 주권의 부활은 지역의 경제적,정치적 안정을 보장하며, 영국의 동남아시아 소유지에서의 민족주의 세력의 열망에 대한 진정제가 될 것이었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아시아에서 영국의 평판에 해를 가할 위험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프랑스 군대를 도울 기회를 살리고자 했다. 런던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 한도에서, 프랑스군을 위한 무기 수송을 인가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었다. 극동의 영국 정부 고등판무관 킬런 경은 싱가폴의 영국군 탄약을 베트남에 보내는 것을 반대했다. 이 수송 때문에, 만약 이것이 발각되면, 영국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경우, 애틀리 총리가 승인하고, 베빈 외무장관이 추진한 대안은 영국 본토의 탄약을 프랑스 본토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이를 인계받은 프랑스는 자국의 선박으로 탄약을 인도차이나로 보내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는 이 사업에 직접 연루되는 것을 피하려 했다. 

영국은 은밀한 지원이 불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는 아시아 민족주의의 눈치를 보는 편을 택했다. 프랑스 정부가 자신의 항공기와 선박이 인도와 버마 영공과 영해를 통과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영국이 압력을 행사해주기를 원했지만, 영국은 아시아 민족주의 여론의 손을 들어주는 선택을 했다. 이렇게 아시아 여론의 압력이 런던이 프랑스를 공개적으로 돕는 것을 방해했다.


출처-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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