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프랑스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대영제국?"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46년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시아에서의 프랑스 비난 여론이 높아갔다. 반불 선동이 특히 심각했던 곳이 인도와 버마였다. 당시 두 나라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준비 중이었고, 식민지 문제에 대한 선명성을 가진 주장을 전개했다. 

인도에서 네루는 서양 외교관과의 대화에서, 베트남 민주 공화국 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에 대한 동점심을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인도,버마,말라야의 일부 급진 민족주의자들은 베트민 지원을 위한 의용군 조직,파견을 주장했다. 

하지만, 프랑스 관리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이들 동남아 국가들이 인도차이나로 향하는 프랑스의 항공기 및 선박에 대한 통과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이는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군에 대한 보급선,생명선을 위협하는 저항이었다. 

따라서 프랑스 외무부는 영국 정부에게 인도,버마 지도자들에 대한 압력을 요청했다. 

런던은 신중하게 대응했다. 이 압력이 아시아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화나게 만들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인도,버마에서 철수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독립 이후 두 나라와 친선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화나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프랑스와의 친선을 위해서 동남아시아 여론의 반감을 조장하는 것은 영국이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영국 외무부 동남아시아국 데닝 국장은 "우리는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동양인들에 맞서 서양 세력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독립했고,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동양인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런던은 프랑스의 극동 전쟁을 위해서 아시아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 결과, 영국 총독의 지지하에, 버마 지도자들은 자국 영공을 통과할 수 있는 프랑스 항공기 수를 하루 2대로 제한했다. 유사하게, 뉴델리의 인도 임시정부는 인도에 착륙할 수 있고, 인도 영공 통과가 가능한 프랑스 항공기 수를 1주일에 한 대로 제한했다. 

영국 정부는 프랑스에게, 만약 이 조치를 따르지 않으면, 프랑스 항공기의 영공 통과가 전면적으로 금지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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