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인도차이나 전쟁과 아시아 민족주의?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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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의 세기였던 20세기에 전후의 프랑스가 경제,군사적 붕괴 상태에서 극동에서 제국의 부활을 시도했다는 것은 얼마나 시대착오적 행동이었는가? 

1946년 12월 베트남 독립을 위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했다. 

47년 전쟁이 본격화되자, 영국 정부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영국은 동남아시아의 질서와 안정을 위해서 프랑스 주권의 회복을 지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영국은 전후 아시아를 강타한 민족주의의 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인도차이나에서의 친불 정책으로 인해서,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의 부활을 돕는다는 오명을 가능하다면 영국은 피하고 싶었다. 

특히 친불정책으로 아시아 민족주의자들을 화내게 만드는 일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극동에서 프랑스의 군사행동에 대한 적개심이 동아시아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확산되어 갔으며, 이 전쟁은 반식민주의 주장을 위한 결집의 계기가 되었다. 

실론 섬의 콜롬보에서 부두노동자들은 프랑스 선박을 위한 작업을 거부했다. 말라야와 싱가폴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고, 노동조합 회원들이 인도차이나로 향하는 전쟁물자와 군대를 위한 작업을 거부했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시위대가 프랑스 대사관 주위에서 프랑스의 적대 행위에 항의했고, 베트남 독립을 요구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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