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디엔비엔푸 전투와 영국?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디엔비엔푸 함락 소식을 알리는 파리의 신문- 르 파리지앙, 1954년>

1954년, 길었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막바지에 디엔비엔푸 전투가 있었다. 미국은 이미 이 전쟁에 깊이 개입했다. 프랑스 전비의 3/4을 담당한 것은 미국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영국에게 인도차이나에 대한 단호한 행동을 주장했다. 만약 인도차이나에서 서양이 대응에 실패한다면, 자유세계는 동남아 전체를 공산주의에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영국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했고, 서양의 단합에 대한 미국의 요구에 저항했다. 아이젠하워와 덜레스가 런던에게 서양세력의 연합으로 인도차이나에 공동 개입하자고 주장하자, 영국 지도자들은 발을 뺐다.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은 프랑스를 위한 서양의 개입은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며, 런던의 어느 누구도 인도차이나 개입이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윈스턴 처칠 총리도 미국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많은 역경을 경험했다." "나는 싱가폴,홍콩,토브루크에서 쓴 맛을 보았다. 이제 프랑스가 디엔비엔푸에서 그럴 차례다."

아이젠하워는 분노했다. 런던은 서양이 직면한 위험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 서양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인도차이나에서 대담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동남아시아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런던이 모른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조지 해링 George C. Herring 에 따르면, 영국의 반대로 서양의 공동행동이 좌초되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106.


아이젠하워는 영국 정부의 반대를 뮌헨협정 시대의 유화정책이라고 비난하고 싶었지만,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상대가 윈스턴 처칠이 아니었던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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