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베트민을 훈련시킨 일본군 교관들...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반자이 돌격>

1946년, 베트민과 프랑스 제국의 군대가 무력충돌을 할 동안,

소수의 탈영한 일본군 교관들이 베트남 훈련병들을 교육시켰다. 일본 교관이 가르치려 한 것은 정신의 힘이 물질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자살 공격으로 프랑스군의 전차,대포,항공기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살 공격론은 46년의 젊은 베트남 애국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가령, 안케 전투 battle of An Khe 에서, 몇명의 베트남 수비대가 마지막 탄창을 소비할 때까지 진격하는 적에게 사격을 했고, 마지막 총알 한 발은 자신을 위해 남겼다. 후송이 불가능한 부상병들은 마지막 수류탄을 가지고 자폭했고, 자폭 하면서 프랑스군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 노력했다. 

이런 행동들을 베트민 정치장교들은 찬양했고, 미디어도 동조했다. 

보다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베트민 선전물은 정당한 동기를 위한 이상주의적 희생의 가치를 찬미했고, 이 희생을 통해 사악한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식 교육의 한계도 있었다. 베트남 훈련병들은 정신의 힘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이 패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사의 죽음에 대한 일본의 신비화는 베트남인들에게 잘 통하지 않았다. 몇몇 지휘관들은 자살 공격을 위한 지원자를 차출하기도 했고, 많은 청년들이 자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살 임무?를 수행한 이후에도 결국 살아서 돌아왔고, 이것이 찬양의 대상이 되었다.


출처-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95.



덧글

  • 무갑 2018/03/17 13:36 # 답글

    자살공격에 가까운 행동을 조장하긴 했지만 일제처럼 무의미하게 병력을 소모하지도 않았고, 살아돌아왔다고 비난하고 괴롭히는 등 본말전도가 일어나진 않았다는거네요.
    본래 목적인 일부 병력을 희생하는 경우가 생겨도 적에게 훨씬 큰 피해를 입히자는 본래 취지에는 일제보다 더 적절하게 대처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한계라는 표현 보다는 일제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상식적으로 대처했다고 생각됩니다.
    일제처럼 무작정 들이 받아 소모시킨게 아니라 최소한의 지원자만 뽑아 희생자를 최소화 하려고 했고, 본래 시작한 계기도 프랑스군에 비해 장비가 부족해서 그런거라서요.
    또한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왔어도 비난하지 않고 영웅시해서 오히려 사기진작용으로도 잘 쓰는걸 보면 오히려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이 대본영놈들보다 몇 수 위라 생각됩니다.
  • 파리13구 2018/03/17 18:09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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