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기 위한 마지막 노력?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베트남 정책 연구의 쟁점들 중 하나는

그가 베트남 정책의 반식민주의,즉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려는 정책을 죽기전까지 유지했는지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

1944년의 프랑스 드골 정부의 승인과 1945년 초의 얄타 회담 등을 거치면서, 결국 루스벨트가 반식민주의를 포기하고, 인도차이나에서의 프랑스 주권 회복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음 기록은 다른 해석을 주장하게 만든다. 즉 얄타 회담 이후, 죽기 한달 전까지도 루스벨트는 신탁통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45년 3월 8일

루스벨트, 백악관에서 중국 대사 헐리 Patrick Hurley , 중국전구 사령관 웨더마이어 Albert C. Wedemeyer , 헐시 William F. Halsey 제독을 각각 개별 면담했다. 

헐시가 중국에서의 국민당-공산당 분쟁을 보고하자, 루스벨트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던 것처럼 보였다. 루스벨트의 관심사는 중국이 아니라 인도차이나 였다. 대통령은 웨더마이어 사령관에게,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군에게 절대로 물자를 넘기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는 자신과 스탈린이 인도차이나에는 식민주의가 아니라 신탁통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루스벨트는 민족의 독립이 미래의 물결이지, 제국과 세력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참고-

Mark Atwood Lawrence and Fredrik Logevall, eds., The First Vietnam War: Colonial Conflict and Cold War Cri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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