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빌 체임벌린과 일본 제국의 부상?" Le monde

"극동에서 본 체임벌린의 유화정책?"

<네빌 체임벌린과 아돌프 히틀러>

일반적으로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해서 유럽적인 시각에서 당시의 영국정책이 히틀러의 침략성을 오인한 데서 비롯된 참사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은 제국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콩,싱가폴,말라야 등을 중심으로 한 극동에 영토를 가진 제국이 바로 영국이었다.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뿐만아니라 영국은 극동에서 일본 제국의 침략에 저항해야 했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했다.

체임벌린은 1937년 5월에 영국 총리에 임명되었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중일전쟁을 도발한 것은 1937년 7월 7일이라는 점은 의미있다. 중일전쟁의 발발과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관련을 가진다고 본다. 만약 영국이 나치 독일과 유럽에서 대규모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영국은 유럽대륙에서 뿐만아니라, 지중해 일대에서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그리고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일본제국의 군사적 팽창을 동시에 견제해야만 하는 막중한 부담을 가지게 되고, 이는 당시 영국 상황에서 사실상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진주만 기습 이후, 극동에서 영국은 일본 제국에게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것이었다. 

극동에서 일본 제국의 침략에서 대영제국이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네빌 체임벌린의 영국은 유럽에서 히틀러의 독일과의 최소한의 현상유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극동에서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 유럽에서 독일과 당분간 친하게 지내는 것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영국이 극동에서 미개한 황인종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유럽에서 같은 백인종인 독일인들과 당분간 친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유럽사의 관점이 아니라, 세계사 global history 의 관점에서 해석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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