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베트남 군부와 프랑스의 고딘디엠 흔들기?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응우옌 반힌 -남베트남군 참모총장,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1954년 6월, 워싱턴의 압력하에 남베트남의 바오다이 황제가 고딘 디엠 Ngo Dinh Diem 을 총리로 임명했다. 

디엠의 총리 임명 이후, 미국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면, 프랑스는 그를 흔들었고, 그에게 대한 부정적 평가를 쏟아냈고, 베트남 군내의 친불 세력을 동원해서 그를 제거하려고 위협했다.

베트남 군의 디엠 흔들기의 중심에는 응우옌 반힌 Nguyen Van Hinh, 남베트남군 참모총장 the Vietnamese National Army Chief of Staff  이 있었다. 1954년 가을, 디엠 정부의 전복을 위협했다. 8월 말에, 힌은 남베트남을 통제하는 것은 디엠이 아닌,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반힌 장군의 기고만장에 대해서 미국 정부는 프랑스를 비난했다. 반힌의 위협에 직면한 디엠을 프랑스가 계속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미국의 덜레스 국무장관은 프랑스가 힌에게 압력을 가할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힌이 비밀리에 프랑스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 의심했다.  

응우옌 반힌 Nguyen Van Hinh 은 프랑스 시민이었고, 프랑스인 아내가 있었다. 그는 또한 프랑스 공군 장교였고, 프랑스의 군율에 복종할 것처럼 보였다.  

반힌 위기가 심화되면서, 미국 정부는 프랑스가 여전히 베트남 상황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왜냐하면, 프랑스가 사이공을 장악하고 있고, 반힌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는 반힌에게, 만약 디엠이 제거되면, 남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원조가 끝장날 것이라 경고했다. CIA는 반힌과 그의 측근들에게 베트남을 떠나라고 설득했지만, 결국 바오다이 황제가 반힌에게 11월에 프랑스로 떠나라고 명령한 이후가 되어야, 이번 위기가 끝났다. 

반힌 위기는 미국이 아닌, 프랑스가 남베트남의 상황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다른 한편으로 디엠을 지지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반하는 일방적 행동도 삼가하려고 주의했음을 보여주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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