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고딘디엠을 둘러싼 미국-프랑스의 갈등? Le monde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

<고딘디엠>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1954년 6월, 워싱턴의 압력하에 남베트남의 바오다이 황제가 고딘 디엠 Ngo Dinh Diem 을 총리로 임명했다. 

처음에 디엠은 프랑스,미국 그리고 남베트남인들 모두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아이젠하워 정부는 디엠의 부상을 환영했지만,프랑스의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는 여전히 폴 엘리 Paul Ely 장군을 통해 베트남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엘리는 고등판무관이자 프랑스군 사령관이었다. 남베트남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프랑스 군대가 여전히 필요했다. 제네바 협정 이후, 엘리는 남베트남에 잔류한 16만 명의 프랑스 군을 여전히 지휘했다. 

디엔비엔푸 위기와 제네바 회담 이후, 베트남에서의 미국-프랑스 관계가 살얼음판 위에 있었다. 양국 지도자들은 어떻게 반공주의 남베트남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했다. 프랑스와 미국은 모두 독립의, 친-서양의 남베트남 국가가 탄생하기를 바랬지만, 그 목적은 달랐다.

제네바 협정 이후 프랑스 정부의 첫번째 목표는 전쟁의 재발을 막는 것이었다. 파리는 또한 남과 북의 베트남에서 동시에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누리기를 원했고, 제네바 협정에서 약속한 1956년의 베트남 자유 선거의 실시를 보장하려 했다. 하지만, 바오다이 황제가 디엠을 총리로 임명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고딘디엠은 반불,친미주의자였고,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미국은 제네바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했고, 유럽방위공동체의 국회 비준을 부결시킨 프랑스의 행동에 화가나 있었다. 미국은 북베트남을 고립시키고, 반공주의 남베트남 국가를 강화시키는데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었고, 만약 북베트남이 승리한다면, 1956년 선거도 거부할 작정이었다.   


참고-

Kathryn C. Statler, Replacing France: The Origins of American Intervention in Vietnam,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Reprint edition (November 11, 2009),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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